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는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 전까지 유력 후보군이 아니었지만 첫 투표부터 두드러진 표를 얻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콘클라베에 참여한 10여명의 추기경과 바티칸 교황청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교황 선출 과정을 11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보도 내용을 보면 레오 14세는 첫 투표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 헝가리 출신의 페테르 에르되 추기경과 선두권을 형성했다. 지난 7일 시스티나 성당 예배당에 모인 추기경 133명은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첫 투표를 진행했다. 일본 교도 통신은 12일 “1차 투표에서 에르되 추기경, 파롤린 추기경, 레오 14세인 로번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 순으로 득표를 했다”며 “세 사람의 표 차이는 25~30표 차였다”고 전했다.
다음날 오전 2차와 3차 투표를 거치면서 레오 14세의 득표수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콘클라베에 한국인 성직자로 유일하게 참여한 유흥식 추기경도 지난 9일 "첫 투표에서 몇 분이 두드러지게 표를 얻었다”며 콘클라베 뒷 이야기를 전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두 번째 투표에서 더 좁혀지고, 세 번째 투표에서 확실히 더 좁혀졌다”며 “네 번째 투표에서는 (레오 14세 쪽으로) 표가 확 쏠렸다”라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파롤린 추기경은 교황청 서열 2위인 국무원장으로서 유력 후보로 일찌감치 거론돼왔지만, 일부 추기경들이 그의 성향에 불편함을 가지면서 첫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르되 추기경은 일부 아프리카 지역 추기경을 포함해 보수 성향 추기경들의 지지를 받긴 했지만,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중 임명된 추기경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추가로 표를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레오 14세는 미국 시카고 출신이지만 페루에서 20여년 간 사목 활동을 했다.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라틴아메리카 교황청 위원회 수장을 거쳤다는 점에서 남미 지역 추기경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다.
독일 출신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정책을 견제한 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은 남미 지역 추기경들로부터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분열적이지 않다"라는 평을 들었다고 했다.
8일 4번째 치러진 투표를 개표하는 과정에서 점점 자신의 표가 쌓이자 레오 14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기도 했다. 드디어 교황 선출에 필요한 89표(3분의 2)를 확보하는 것으로 확인되자 모두가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 레오 14세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있어서 누군가 그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눈물을 글썽이는 추기경들도 있었다. 곧 100표에 가까워지자 콘클라베를 관장한 파롤린 추기경이 “모두 자리에 앉아 달라”며 진정시킬 정도였다.
교도통신은 “레오 14세가 133표 가운데 80%에 가까운 105표를 획득했다”고 보도했다. 추기경들의 비밀 엄수 서약 탓에 정확한 득표수가 알려지는 것은 드문 일이다. 선출이 확정되자, 추기경들은 새 교황에게 열렬히 축하 인사를 건넸다. NYT는 “이들은 언어도, 우선순위도, 관심사도 제각각이었지만, 선택은 하나였다”며 “짧고 평화로운 콘클라베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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