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와 생태계 파괴, 대멸종 등 인류가 초래한 지구의 위기 앞에서 예술가들이 펜과 마이크, 카메라를 들었다. ‘펑크록 대모’로 불리는 로큰롤 전설 패티 스미스는 시와 소리로 환경 문제를 노래하고, 세계적인 사진가들은 북극의 눈물과 사라지는 생명에 초점을 맞추며 경각심을 일깨운다. 예술을 매개로 불편한 진실을 전달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관람객들에 닿을지 관심이 모인다.
아름답고 우아한 패티 스미스의 세계
“이번 전시는 고통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핵무기의 폐해라든가 멸종, 산불로 인한 숲의 파괴 등이죠. 하지만 사회 이슈를 표현하는 것뿐 아니라 창작하며 살아가는 예술가의 무게와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난달 19일 서울 남창동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개막한 전시 ‘끝나지 않을 대화’를 위해 한국을 찾은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설명처럼 소리와 영상, 시와 드로잉이 어우러진 작품들은 아름답다는 감상이 먼저 든다. 4개 층의 전시 공간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소리에 은유와 상징이 혼재된 장면을 더하고 스미스의 시와 목소리까지 입힌 8편의 영상 작품들로 가득 찼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빛과 소리의 바다에 빠져드는 듯한 시청각적 쾌감이 도드라진다. 바닥에는 스미스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자막이 흐르는데 우아하고 감각적이다. 스미스는 “한국어는 무척 음악적이라서 좋아한다”며 전시 구성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작품들은 여러 주제를 다루지만 환경 문제의 비중이 높다. 스미스가 태어난 1946년부터 2024년까지 세계에서 일어난 주요 산불을 하나하나 호명한 묵시록적 기록 ‘산불 1946-2024’, 기후위기로 멸종한 수많은 종의 이름을 부르며 상실을 기록한 ‘대멸종 1946-2024’는 특히 눈에 띈다. 한국 비무장지대(DMZ)의 자생식물을 채집해 소규모로 재현한 옥상의 테라리움도 특별하다.
전시 작품 대부분은 소리로 작업하는 2인조 그룹 ‘사운드워크 콜렉티브’와 스미스가 협업한 결과물이다. 그룹 멤버인 스테판 크라스닌스키가 소리를 수집해 음악을 만들면 스미스가 시를 쓰고 낭독했다. 두 사람은 10여 년간 서신과 예술적 교감을 나누며 프로젝트를 하나씩 완성해왔다. 스미스는 “내가 크라스닌스키에서 영감을 받는 것처럼 전시를 찾아준 남녀노소가 우리 작품을 통해 어떤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시를 써본다거나 세상을 위해 무언가 해보고 싶다고 다짐하는 일들이 벌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20일까지.
시시각각 사라지는 지구의 풍경을 남기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는 흑백 사진들이 서늘한 기운을 전한다. 북극의 풍경을 포착한 아이슬란드 작가 라그나르 악셀손의 작품이다. 그는 40년 동안 지구 최북단을 탐험하며 인간, 동물, 자연의 독특한 공존을 흑백 필름에 새겼다. 동시에 녹아내리는 그린란드의 해빙과 소멸 중인 시베리아 툰드라를 목격한 그는 지역 주민들이 직면한 전례 없는 위기를 기록하는 3년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사라져가는 극지방의 장엄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여정이다.
기후변화를 경고하기 위해 아이슬란드·이탈리아·벨기에·미국 출신의 사진가 4명이 참여한 사진전 ‘더 글로리어스 월드’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악셀손의 신작 46점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작가 마르코 가이오티가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을 생생하게 포착한 사진 24점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또 벨기에 작가 닉 하네스는 1960년대 먼지만 날리던 땅에서 최첨단 도시로 변모한 두바이를 통해 현대 문명의 양면성을 드러내고, 미국 작가 크리스 조던은 멀리서 보면 명화, 가까이서 보면 쓰레기인 연작 ‘숫자를 따라서’를 선보여 눈길을 끈다. 전세계가 10초마다 사용하는 비닐봉지, 1분마다 쓰는 플라스틱 수만, 수십 만개를 하나하나 픽셀처럼 찍어 그림을 완성하면서 대량 소비를 비꼰다. 작가는 동시에 파타고니아 해변에서 고요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담아낸 ‘황홀한 폐허’ 시리즈도 함께 선보인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지구를 파괴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전시는 8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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