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군은 굴과 바지락으로 유명했던 경기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에 1951년 ‘쿠니사격장(Koon-Ni Range)’을 만들었다. 이후 썰물이 되면 갯벌에 미군기가 떨어뜨린 포탄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해산물과 함께 포탄을 수확했다. 이곳에 거주한 지 56년이 넘은 윤석근(81) 할아버지는 그 쇠붙이들을 용광로에 녹여 철근을 만든 뒤 내다 팔았다. 하늘에서 금속을 뿌리는 미군기는 윤 할아버지에게 생명줄이었다.
이곳은 이 같이 생존의 공간으로 보이지만 무엇보다 상처의 공간으로 분류된다. 미 공군기는 오폭·오발사고를 적지 않게 냈으며 세월과 함께 피해도 누적됐다. 2017년 성공회대 산학협력단이 발간한 ‘매향리의 역사·문화, 현대사 백서’에 따르면 이곳에서 군 관련 피해로 임산부를 비롯해 8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했다. 2007년 원진환경건강연구소의 조사결과를 보면 매향리 주민들의 자살률은 다른 지역보다 최대 7배 높았다. 윤 할아버지는 “24시간 내내 사격훈련이 있는 날도 있었으며 집 유리창이 깨지는 일이 다반사였다”며 “굴 따고, 포탄 따던 곳이었지만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고 말했다.
이 같은 화성시 매향리 지역이 이른바 ‘평화공간’으로 탈바꿈 중이다. 올 4월 21일 본격 개관한 평화기념관이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 있다.
평화기념관은 181억5400만원의 예산이 투입돼 지하 1층, 지상 2층, 건축총면적 2136㎡ 규모로 건립됐다. 본관은 세계적인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가 설계했으며 주황색 ‘M’자 점토벽돌 구조물을 가로로 연결해 덮개를 씌운 형태로 만들어졌다. 매향리(Maehyangri)·박물관(Museum)·기념비(Memorial)의 ‘M’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구조물이다.
평화기념관 1층은 빛과 희망, 자유와 평화, 평화를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어린이체험실로 운영 중이다. 2층은 쿠니사격장 설치부터 폐쇄까지의 과정, 폐쇄를 위한 주민들의 투쟁, 미군 훈련의 실상 등을 볼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구성됐다.
본관 옆 스프링 모양의 전망대와 장교숙소 등 옛 미군시설 일부가 평화기념관의 일부다. 화성시는 이곳을 ‘서남부 핵심 문화복합시설’이자 ‘경기 남부 최대 평화의 성지’로 도약시킨다는 계획이다. 화성시는 앞서 매향리 일대를 관광명소로 조성하기 위해 97만여㎡의 쿠니사격장 부지 중 57만㎡를 평화생태공원으로 만들었고, 나머지 24만㎡의 부지에 화성 드림파크를 건설하기도 했다.
기념관 주변에서 만난 매향리 주민들은 이번 평화기념관 개관과 관련해 기대감이 컸다. 매향리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A씨는 “불경기가 오래되면서 이 일대 상권은 다 죽었다고 봐야 하며 몇 년 전부터는 바다 수온이 올라가 작년부터는 바지락도 뚝 끊겼다"며 "평화기념관이 활성화돼 사람들이 몰려 관광지로서 인기를 끈다면 주변 상권도 활성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역시 “(평화기념관 개관이) 매향리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은 매향리의 상처를 상징하는 포탄 설치작품들이 건물내 전시되지 못한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2021년 완성된 평화기념관이 4년이나 늦게 개관한 이유 중 하나는 포탄 설치작품을 놓고 발생한 양측의 팽팽한 기싸움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예술계에서는 마을 곳곳에 산재한 포탄 설치작품의 값어치를 최소 100억원 대로 추산중이다.
실제 매향리 일대가 상흔의 공간에서 평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까지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사격장 폐쇄를 위한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항의가 잇따랐으며 2005년에서야 사격장 폐쇄가 결정됐다.
평화기념관에서 만난 남양주 시민 전지용(60)씨는 “주민 인터뷰 등이 충실하게 잘 전시됐지만 평화기념관은 본래 주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이라며 "더 이상 주민들이 아프지 않도록 지자체에서 잘 살폈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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