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에서 1강(强)으로 꼽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상법 개정 재추진 의지를 밝히자 재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특히 경영권 공격의 빌미가 될 수 있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까지 들고나온 것은 친기업을 표방하는 이 후보의 기조와 배치된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사라지는 만큼 상법 개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실질적인 대응책을 찾는 게 낫다는 현실론도 대두되는 분위기다.
특히 이 후보가 “상장사의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해 주주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고 밝힌 것에도 재계는 긴장했다. ‘원칙적’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사실상 ‘의무 소각’이 아니냐며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21일 이 후보는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업계의 요구 사항을 청취하던 도중 “왜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시냐”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을 꺼냈다. 배당소득세 개편, 사외이사 선임 조건 완화 등을 거론하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에게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상법 개정이 최우선 과제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 후보는 “자본시장이 정상화하는 게 이익이지 않느냐”며 “상법이 개정되면 지배 대주주의 횡포가 줄어들고 비정상적 경영 판단도 중단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 후보가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상법 개정안은 기존에 국회에서 의결한 법안보다 내용이 더 강화됐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거부권을 쓴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에 전자 주주총회 제도를 의무화하는 게 핵심이다. 재계는 이 두 가지 내용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대 의견을 표명해왔다. 이사회 결정에 대한 주주들의 소송이 빈번해지고 기업은 적자를 감수하는 신사업 진출이 불가능하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 이 후보는 당초 여야 간 논의 부족으로 빠졌던 조항까지 모두 포함시키겠다고 나섰다. 주주가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받아 한 사람에게 몰아줄 수 있게 한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출하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가 대상이다. 소액주주의 대표성을 강화하고 경영 감시 기능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제안된 제도지만 투기 자본에 경영권을 노출시키는 독조 소항으로 작용될 우려를 안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집중투표제는 견제와 균형의 측면에서 어긋나는 제도”라며 “소액주주를 위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경영권을 공격하려는 쪽에서만 좋은 수단이 되고 방어에는 취약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일반 상장사에서 분리 선출되는 감사위원 수를 2명 이상으로 늘리면 한 명을 분리 선출하도록 돼 있는 금융회사보다 더 강한 규제를 받게 되는 셈”이라며 “그렇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려는 취지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는 “소송 남발과 기업의 혁신 의지 훼손 같은 부작용은 불 보듯 뻔하다”면서도 공식적인 입장을 자제하고 있다. 앞서 경제단체들이 한목소리로 강경한 반대 목소리를 낸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불과 몇 달 사이 재계의 반응이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사라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는 과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 주도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최후의 보루로 대통령의 거부권이 있었지만 이 후보가 집권할 경우 이마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다. 거부권이라는 걸림돌이 사라진 만큼 민주당은 속전속결로 상법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재계에서는 끝까지 저항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정적 상황에 대한 조속한 대응책 마련이 더 효과적이라는 내부 판단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상법 개정안 재추진 방침에 대해 이 후보는 간담회가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특별한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수준으로 정상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갖추자는 것”이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 다시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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