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도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임에도 그동안 효자·효녀로 불리면서 자신의 시간을 가족 돌봄에 할애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한 명도 없도록 관련 법안을 통해 국가와 우리 사회가 적극 나서야 합니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은 이달 1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족을 돌보고 있는 아동·청년에 대한 일관된 기준이 없으니 복지 현장에서 선제적으로 지원 대상을 찾기 어렵다”며 “가족 돌봄 당사자들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복지 사각지대처럼 여겨져왔다”고 말했다.
초록우산은 1948년 미국기독교아동복리회(CCF)가 출범시킨 아동복지 전문기관으로 국내에서는 1948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2022년 8월부터 초록우산을 이끌고 있는 황 회장은 삼성그룹 출신의 금융통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을 떠난 후에는 우리금융지주회장과 금융투자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평소 사회 공헌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금융투자협회장 시절 초록우산이 운영하는 중증장애인 시설인 한사랑공동체에서 봉사 활동을 하면서 초록우산과 인연이 닿았다.
올 2월 말 국회에서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기까지 초록우산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가족 돌봄 아동은 질병·장애 등을 앓는 가족의 보호자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말하며, 이 법률안은 가족 돌봄을 비롯한 다양한 위기 상황에 놓인 34세 이하 아동과 청년을 지원하는 법이다.
황 회장은 “초록우산은 2021년 가족 돌봄 아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가족 돌봄 아동을 찾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했다”며 “또 2023~2024년에는 현장에서의 지원과 함께 우리 주변에 가족 돌봄 아동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돌봄약봉투 캠페인’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초록우산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아이들의 가족 돌봄은 국가 차원에서 전수조사를 거쳐 어느 정도 통일된 기준으로 접근해야 하며, 그 근거가 될 법적인 토대가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 국내에는 가족 돌봄 아동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이런 아동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실정이다.
황 회장은 “법안을 만들기 위해 그 동안 정책 토론회, 기자회견,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고 국회와 정부를 향해서도 많은 호소를 했다”며 “이런 노력 덕분에 정부와 국회에서 가족 돌봄 아동 지원을 위한 법안 필요성에 공감해 이 같은 법안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가족 돌봄 아동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아동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도 국가와 사회, 그리고 기업들이 노력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몇 년 전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됐던 n번방 아동 성착취 사건 등 우리 아이들은 온라인에서 너무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온라인 환경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이고 영국·호주와 같이 온라인안전법 등을 제정해 아이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초록우산은 비영리 재단으로서 후원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황 회장은 우리나라도 유럽이나 미국처럼 활발한 기부 문화가 조성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는 “우리 국민들이 액수에 상관없이 1년에 최소 한 번 정도는 사회 공헌 재단 같은 곳에 기부를 한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이 같은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 등의 제도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나눔으로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길에 동참한다면 초록우산은 물론 우리나라가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것”이라며 “나눔의 가치와 연대를 통한 긍정적 변화를 경험하면서 일상적인 기부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아낌없는 노력을 펼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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