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낭설로 시작됐던 ‘한덕수 대망론’에 불이 붙고 있다. “이재명 대항마가 없다”는 국민의힘 내부 볼멘소리에 불과했지만 보수 진영의 위기감이 커지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도 심상치 않은 행보를 이어가면서 현실화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한 권한대행이 보수 진영 후보로 대권 도전에 나설 경우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일변도의 대선 판도에도 일대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10일 정치권은 한 권한대행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화 내용이 전해진 언론 보도로 종일 술렁거렸다. 이달 8일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출마할 것이냐’고 물었고 한 권한대행이 이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은 “외교 사안에 해당해 확인 불가”라는 입장만 내놓았을 뿐 보도 내용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대선 출마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외교 기밀에 해당하는 정상 간 통화 내용을 공유받는 인사들은 정부·정치권 고위층으로 제한된다. 국민의힘에서 한 권한대행 출마 요구가 커지는 시점에서 누군가 여론 간 보기 등 의도를 갖고 흘렸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이틀 전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의 후보자를 지명한 것을 두고 ‘보수층 내 입지 구축 시도’라는 평가가 식지 않는 와중이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한 권한대행의 출마를 촉구하는 의원들의 집단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운 ‘한덕수 차출론’의 명분은 크게 세 가지다. 무엇보다 이 전 대표에게 맞설 보수 진영 내 후보가 부재한 가운데 엘리트 관료 출신인 한 권한대행이 피의자 신분인 이 전 대표와 극명한 차별화를 노릴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한 권한대행 출마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당내 30여 명에 달한다”며 “기존 당내 주자들이 이 전 대표와의 (여론조사) 대결에서 열세가 지속된다면 차출론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트럼프 스톰’을 헤쳐나갈 충분한 통상 전문성과 국정 운영 경험을 갖췄다는 점, 호남 출신으로 사회 통합을 이끌 구원투수로 손색이 없다는 점을 꼽는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 권한대행에게 출마 의향을 물은 것이 통화에 대한 만족감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부회장 출신의 태미 오버비 올브라이트스톤브리지그룹 선임고문은 “한 권한대행은 워싱턴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라며 “최근 트럼프 팀에서도 ‘한 권한대행의 전화를 받으라’는 요구가 지속됐다”고 전했다.
한덕수 대망론을 추종하는 이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본선 경쟁력도 자신한다. 이달 7~9일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한 권한대행 국정 운영 기대감’에 대한 질문에 ‘잘할 것’이라는 응답은 56%로 ‘잘 못할 것(37%)’을 크게 앞질렀다. 반면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12%), 홍준표 대구시장(7%), 오세훈 서울시장(5%),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5%) 등 국민의힘 4강 후보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이 전 대표(32%)에 못 미쳤다.
하지만 한 권한대행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현실적 요인 역시 적지 않다. 무엇보다 대선일 지정까지 마친 한 권한대행이 돌연 심판에서 선수로 뛸 경우 6·3 대선의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또 한 권한대행의 사퇴로 다시 ‘대대행 체제’가 재연되면 국정 안정성과 국가 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실패한 정권 2인자’라는 낙인에 따른 중도 확장성 한계 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이 20명 안팎에 달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추대가 어려운 만큼 한 권한대행이 이들의 견제를 돌파해낼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지적도 있다.
한 권한대행의 대권 도전 여부는 이번 주말이 1차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황우여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장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권한대행 출마와 관련해 “(스스로) 주중에는 결정해야 할 것”이라며 “‘꽃가마 추대론’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14~15일 후보 등록 기간 이후에도 출마의 길을 열어두는 ‘경선 특례’ 제공 여부에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결국 한 권한대행이 대권 도전을 결심할 경우 경선 참가보다는 5월 3일 전당대회를 통해 최종 선출된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막판 단일화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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