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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송현] 국가 결산보고서, 문학 작품처럼 읽히길

박성진 연세대 글로벌행정학과 교수





“울면서 번역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데버라 스미스가 한 말이다. 그가 번역한 한글 소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는 결국 한강 작가에게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안겨줬다. 그의 발언은 언어 너머의 정서까지 옮겨야 하는 번역가의 고충으로 해석된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한 작가의 섬세하고 밀도 높은 문장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한 해 동안의 나라 살림을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 전달하는 일도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것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세금을 걷고, 정책을 설계하고,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많은 행정 행위는 마치 장편소설처럼 복잡하고 방대하다.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풀어 설명하자면 책 수십 권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해마다 국가의 재정 상태와 운영 결과를 ‘숫자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 즉 ‘국가 결산’을 거친다. 이는 우리가 흔히 ‘결산 보고서’라고 부르는 매우 중요한 문서다. 이 보고서는 국민에게 정부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쓰였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부가 보유한 자산과 부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림으로써 ‘재정 운영에 대한 설명 책임’을 실현한다.



정부가 8일 발표한 ‘국가 재무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는 현금성 자산 579조 원, 투자자산 1448조 원, 토지·건물 등 유형자산 732조 원, 사회기반시설 424조 원을 보유하고 있다. 국채·차입금 등 1016조 원과 장래 군인·공무원의 퇴직급여 지급에 대비한 충당 부채 1313조 원 등 국가 부채도 함께 인식돼 있다. 아울러 국회와 대법원 같은 헌법기관과 주요 정부 부처들이 한 해 동안 제공한 행정 서비스의 총원가와 이를 충당하기 위해 거둬들인 국세·부담금·사회보험료 등의 수익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재정운영표’도 결산 보고서에 포함해 국회에 제출될 것이다. 이처럼 한 해 동안의 국가의 행정과 정책 결과가 숫자로 정리돼 국민 앞에 제시되는 것이 국가 재무제표다.

이러한 국가 재무제표의 작성은 단지 회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재정 운영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한 축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영국 등 많은 나라들이 복식부기·발생주의 회계 기준에 따라 국가 재무 정보를 정리해 공개함으로써 서로 비교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최근 우리 정부는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결산서로의 전환을 위해 ‘국민 중심 국가 결산 보고서 개편’을 추진 중이다. 2025 회계연도 결산부터는 기업의 재무제표처럼 현금흐름표를 포함한 새로운 결산서가 도입될 예정이다. 우리의 결산서가 ‘읽히는 재정 보고서’로 거듭나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한 작가의 문장이 전 세계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번역의 기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어 너머의 감정과 의미를 오롯이 담아내려 했던 번역가의 노력 덕분이었다. 우리의 재정 이야기 또한 국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돼야 한다. 정부도 결산서 눈높이를 국민에게 맞추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기를 바란다. 이제 국가 결산서도 문학처럼 읽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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