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4월 18일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이들의 임기를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연장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임명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문·이 재판관 후임자 지명 논의로 야당의 입법·탄핵 공세에 반격을 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가 지연되자 정치권이 인용과 기각을 위한 수단을 총동원하는 양상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31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재판관 임기 연장과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재판관 임명권 제한을 골자로 하는 헌재법 개정안을 야당 주도로 통과시켰다. 민주당의 강공 드라이브에 4월 1일 법사위 전체회의와 본회의에 곧바로 법안을 회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두 재판관의 임기가 남은 만큼 본회의 처리 시점은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이성윤 의원 안에는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기존 재판관이 계속 직무를 수행하고 국회에서 선출하거나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고 7일이 지날 경우 임명을 간주한다는 내용이, 김용민 의원 안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각각 담겼다. 두 법안이 시행될 경우 4월 18일 두 재판관의 임기가 끝나도 대통령 권한대행이 후임 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 야당은 또 소위 심사 과정에서 ‘법 시행 직전에 임기가 만료된 퇴임 재판관에도 적용한다’는 부칙을 둬 법안이 18일 이후에 공포돼도 문·이 재판관에게 임기 연장 조항을 적용할 수 있게 했다.
야권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을 겨냥한 법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와 신장식 의원도 이날 재판관 임기 연장, 권한대행의 임명권 제한이 담긴 헌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신 의원 발의안에는 헌재의 권한쟁의 심판 및 헌법소원 인용 결정을 미이행하는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상의 자격정지에 처하게 하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헌법이 6년으로 정한 재판관 임기를 법률로 변경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사위는 이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 검토 보고서(이화실 전문위원)에서 임기 연장 조항에 대해 “헌법에서 정한 임기를 법률로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선출이나 대법원장 추천 후 7일이 경과하면 재판관을 임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대목도 “헌법에서 규정한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의 효력을 법률을 통해 동일하게 부여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민주당이 이 같은 카드를 꺼낸 데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탄핵 선고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문·이 재판관의 임기 종료 이후로 밀릴 가능성이 있으니 이들의 임기 연장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일각에서 ‘윤석열 복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며 “대한민국 전역이 군사계엄에 노출되고 국민들이 저항할 때 생겨나는 엄청난 혼란과 유혈 사태를 대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민주당이 거론한 ‘한덕수 재탄핵’에 대비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빨리 문·이 재판관 후임을 지명해야 한다(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사청문회 개최 등 일정을 감안하면 적어도 4월 초에는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 대통령 탄핵 선고에 속도를 내는 게 먼저”라면서도 야당의 추가 탄핵 여부를 살피며 후임자 인선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재판관) 임기 만료 두 달 전에 청문회 개최 요구서를 제출하는 게 관행”이라며 “민주당이 또다시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에 돌입한다면 어떻게 대처할지 정부와 여당이 협의해서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국회 몫 3인 재판관 임명 논란 당시 여당은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는 지적에는 “3명 중 2명이 임명돼 헌재가 가동되고 있다”며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있다는 컨센서스가 이뤄졌다”고 답했다.
다만 총리실은 이런 요구에 대해 “후보자 인선을 검토한 적 없다”며 “이를 고민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4월 18일 전 윤 대통령 선고가 나올 가능성이 큰 데다 야당의 추가 탄핵 추진의 도화선으로 번질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여당 지도부에서 헌재의 신속한 선고를 촉구하는 발언도 공개적으로 나왔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조속히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야당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4월 1일부터 4일까지 본회의를 개최하는 의사일정을 단독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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