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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닮은 '사상계'…난세에 복간은 숙명"

‘사상계’ 복간한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장

55년만에 재창간, 필진 50여명 참여

공론장 표방…2000부 정기구독 신청

편집권 보호위해 광고 게재도 안해

국론분열의 시대, 화합·통합 역점

다음호 탄핵심판 관련 글 다룰것

사상계 역할 사라지는 세상 왔으면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장이 31일 서울 여의도 장준하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사상계’ 재창간호 발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독립운동가 고(故) 장준하 선생이 1953년 3월 창간한 월간 종합 교양지 ‘사상계(思想界)’가 4월 1일 복간된다. 1970년 9월 필화 사건으로 폐간된 지 55년 만이다. 발행인이자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장은 재창간을 하루 앞둔 31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특정 세대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차원이 아니라 전 세대가 읽고 공감하며 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보자는 생각에서 ‘사상계’를 다시 펴내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6·25 전쟁통에 창간한 ‘사상계’는 당시 국내 지식인들의 공론장으로 평가되며 정치·경제·사회·문학·철학·예술 등 다방면에 걸친 글을 싣고 담론을 이끌었으나 1970년 5월호에 김지하 시인의 담시 ‘오적(五賊)’을 실었다가 강제 폐간됐다. 이후 여러 차례 복간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장 회장은 “그동안 복간 요구가 꽤 있었지만 대부분 ‘사상계’의 이름을 가지고 수익을 창출하려는 시도여서 거절했다”며 “지난해부터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과 ‘사상계’가 다시 부활할 때가 됐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말 복간 계획을 공식 발표한 뒤 2개월여 만에 재창간호 2000부에 대한 정기구독 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사상계’의 귀환을 반기는 분위기다. ‘사상계’는 1953년 3월 창간 당시에도 1쇄 3000부가 모두 팔려나갈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장 회장은 복간호 정기구독분이 마감된 데 대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결과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며 “무리한 확장은 지양하고 여건이 허락하면 계간지에서 격월간지·월간지로 전환한다는 계획만 있다”고 전했다.

‘사상계’는 자본으로부터 편집권을 제약·침해받지 않기 위해 오로지 정기구독 수익으로만 운영된다. 수익 창출 목적이 아니라 계몽 매체라는 창간 취지를 그대로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잡지 전체가 단 한 페이지의 광고 없이 오로지 필진의 글로만 채워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장 회장은 발행인으로서 편집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는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면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장이 31일 서울 여의도 장준하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1970년 강제 폐간된 ‘사상계’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사상계’ 복간호에 필진으로 참여한 인원은 50여 명에 달한다. 최자웅 신부, 사회학자 양애진, 기타지마 기신 일본 욧카이치대 명예교수, 농업인이자 작가인 유다님, 교육운동가 현병호 등 과수원 운영자부터 기후학자, 법조인, 우주과학자, 중소기업 대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소정의 원고료만 받고 정기적으로 기고를 약속하며 복간에 힘을 보탰다. 다양성을 위해 연령대로는 20대부터 70대까지, 남녀 성비는 5대5 비율로 맞춰졌다. 장 회장은 “국민으로서의 의무감·책임감에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그동안 그럴 만한 공간이 없었고 ‘사상계’라는 새 그릇이 생기니까 많은 분들이 동참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사상계’ 재창간호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전면 재구성됐다. 판형과 제호는 그대로 복원했지만 편집과 구성은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춰 변화를 줬다. 장 회장은 “누구나 와닿을 만한 내용들로 채우려고 했고, 특히 젊은 세대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스타일로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지금은 화합·통합을 이끌어내기에는 너무 힘든 시대이지만 힘들어도 의미 있는 일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문명 전환지’를 표방하고 있는 재창간호에는 김려실 부산대 교수의 ‘사상계와 계엄령’을 포함해 총 35꼭지의 글이 실렸다. 정치와 역사를 중심으로 환경·종교 등 국가 미래를 위한 전반을 다루고 있다. 재창간호의 내용에 대해서 그는 “비상계엄과 관련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의견을 적절히 다루면서 국민들이 각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며 “앞으로 정치와 역사를 중심으로 환경과 종교 등 국가 미래를 위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장 회장은 “독자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설레고 가슴이 떨린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과 관련해서는 다음 호에서 깊이 있게 다루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 회장 입장에서는 올해가 장준하 선생 서거 50주기여서 ‘사상계’ 복간이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장준하 선생은 평생을 미래가 불안정한 상황, 힘든 세상을 살다 가셨고 ‘사상계’도 그분을 닮아서 ‘세상이 불편할 때 나와서 역할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게 그분의 숙명인 것 같다”고 했다. 장 회장은 최종 목표를 “‘사상계’의 역할이 사라지는 세상이 구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비판의 대상이 사라지면 계몽이라는 ‘사상계’의 역할도 끝나는 것”이라며 “다음 세대는 ‘사상계’를 박물관 혹은 역사책에서나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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