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의 생화학 반응을 조율하는 효소가 실제로는 유전자가 설계한 나노 기계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물리학 최고 권위지인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에 최근 공개됐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물리학과 츠비 틀루스티(Tsvi Tlusty) 특훈교수팀은 효소 내부의 점탄성이 효소의 생물학적 기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밝혀냈다고 31일 공개했다.
효소는 음식물을 소화시키고, 에너지를 만들며, DNA를 복사하고, 노폐물을 처리하는 화학 과정을 활성화하는 생체 단백질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효소의 기계적 특성인 점탄성이 망가지면 효소의 화학적 기능인 활성도 크게 떨어졌다. 쇼크 옵서버(‘쇼바’라고 불리는 자동차, 오토바이 등의 충격 완충 장치) 같은 기계의 완충 장치가 망가지면 기계가 고장 나듯, 효소도 스프링과 같은 즉각적이고 유연한 복원력인 점탄성이 망가지면 본래 기능을 잃는 것이다.
연구팀은 첨단 측정 기술을 통해 효소에서 기계의 쇼크 옵서버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고변형(high strain) 영역을 찾아낸 뒤, 해당 영역의 아미노산 1개를 바꿔 돌연변이를 만드는 실험으로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 실험 결과, 아미노산 단 1개만 바꾸는 돌연변이로도 효소의 활성이 50% 이상 감소했다. 실험에 사용한 구아닐레이트 인산화효소는 총 207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다.
돌연변이가 일으킨 효소의 3차원 구조 변화를 예측하는 데는 단백질 구조 예측 인공지능인 알파폴드(AlphaFold)가 쓰였다. 실제 구조 변화가 더 클수록, 효소 활성이 더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효소 구조의 기계적 성능과 생화학적 기능이 정교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연구를 주도한 츠비 틀루스티(Tsvi Tlusty) 교수는 “우리는 이제 효소를 단순한 화학 반응 도구가 아니라, 유전자가 정교하게 설계한 소프트 나노 기계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이번 연구는 기계적 특성이 생명의 정밀성과 효율성을 끌어낸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의 일라이셔 모지스(Elisha Moses ) 박사팀과 함께 했다. 연구 수행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기초과학연구원(IBS), 이스라엘 과학재단(Israel Science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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