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외교장관들이 역내 경제통합을 위한 3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확대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3국 모두 미국의 관세 폭격에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이러한 방안이 제시됐지만 3국이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온도 차가 드러난다는 분석이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22일 도쿄 외무성 이쿠라공관에서 열린 ‘제11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인구 16억 명, 국내총생산(GDP) 합산 24조 달러(약 3경 5172조 원)인 3국은 역내 경제통합을 추진하기로 했다”며 “한중 FTA 협상 재개와 RCEP 확대 추진, 지역 공급망 원활화를 위한 대화와 소통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왕 외교부장은 “3국은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견지하고 경제 글로벌화를 더욱 포용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주의, 자국 우선주의에 맞서 중국이 역내 경제협력을 주도하겠다는 메시지다.
왕이 외교부장의 선명한 입장과 비교하면 한국·일본은 신중한 스탠스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한중일 지속 협력에 대한 의지를 밝혔으나 FTA·RCEP 등은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중일이 손잡고 미국에 맞선다기보다는 중국이 말하는 역내 경제협력 활성화 등에 원칙적으로 찬성한 것”이라고 전했다.
FTA·RCEP는 최근 수년간 한중일의 주요 의제는 아니었다. 한중일 3국은 2012년부터 FTA 협상을 진행했지만 2019년 이후로는 추가 협상 일정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RCEP는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아세안 10개국 등 총 15개 국가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FTA로 2022년 1월 공식 발효됐으나 개방 수준이 낮다. 애초에 중국이 미국과의 디커플링에 대응하려 주도한 체제인 탓에 향후 미국의 견제도 예상된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중국은 최근 미국의 행보와는 반대로 ‘세계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책임 있는 국가는 중국’이라는 메시지를 내 왔다"며 “그동안 정체돼 있던 한중일 협력을 3국 FTA 추진·RCEP 확대 등을 통해 재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최 부소장은 “한국·일본은 관세로 대표되는 트럼프발 통상 악재에 대응하는 한편 역내 안보 문제에 있어서도 중국과 지속적인 협의가 필요하다"며 "적정 수준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