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2일(현지 시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상호관세 부과를 공식화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무역적자로 자국에 손해를 입히는 대표적인 국가로 한국을 콕 집어 언급했다. 양국이 대부분의 품목에서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관세장벽 철폐 등 구체적인 양보안을 내놓으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케빈 해싯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17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유럽과 중국·한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며 “비관세장벽이 있는 데다 관세도 높아 미국 기업들이 경쟁하기 어렵기 때문에 적자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이 당장 모든 장벽을 낮추면 협상은 끝날 것”이라며 “우리는 많은 나라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에 호의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기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유연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나 많은 나라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무역 관련 장벽을 없애지 않는 나라들에는 관세를 물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미국이 방위비 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지목한 적은 있지만 ‘무역적자국’으로 직접 거론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유럽·중국은 미국과 이미 보복관세를 주고받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을 다음 순서로 정조준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미(對美) 무역흑자액은 658억 달러로 멕시코·일본·대만 등에 이어 미국의 여덟 번째 무역적자국이다.
한국과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어 절대 다수 품목에서 서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해싯 위원장의 이번 언급이 한국의 ‘비관세장벽’을 겨냥한 발언으로 분석되는 배경이다. 미국은 앞서 여러 차례 △농업 부문 위생·검역(SPS) △디지털 통상 장벽 △중국산 철강의 한국을 통한 우회 수출 등 한국의 비관세장벽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해싯 위원장은 이날 “무역장벽을 낮추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앞서 전날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도 상호관세를 부과한 뒤 개별 국가들과 양자 협정을 체결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새로운 기준선’으로 공정성과 상호성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상호관세 및 품목별 관세를 예고대로 다음 달 2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특히 “(관세가) 어떤 경우에는 동시에 부과될 것”이라며 “그들이 우리에게 부과하면 우리도 그들에게 부과할 것이다. 그에 더해 자동차와 철강·알루미늄 등에 추가할 수도 있다”며 상호관세와 품목관세가 ‘중복 적용’될 가능성도 강하게 시사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초 관세 유예를 요청하는 자동차 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전화 회의 중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buckle up)”며 관세를 철회할 뜻이 없다고 밝힌 사실도 이날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4일 관세 유예를 요청하던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자동차 메이커 ‘빅3’ 회사의 CEO들과 전화 회의를 하던 중 “안전벨트를 매라. 4월 2일 관세에 동참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 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자동차에 대해 1개월간 관세를 면제한다고 발표해 재계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해당 언급은 결국 관세를 부과하게 될 것이니 대비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단순한 협상 도구가 아니다”라며 “그는 관세가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 것으로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전략을 국가별 맞춤형 부과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 백악관이 무역 상대국을 3단계로 나눠 ‘낮음’ ‘중간’ ‘높음’ 등으로 단순하게 일괄 관세를 부과하려다 해당 안을 하루 만에 폐기하고 개별 국가마다 세율을 따로 매기는 방향에 다시 무게를 싣고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무역 상대국 수백 곳의 품목별 관세와 비관세장벽을 일일이 분석해야 하는 만큼 실제 상호관세가 적용되기까지 6개월 이상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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