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절 기념식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3.1운동의 교훈은 ‘강자의 선의’에 스스로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를 풀어 전하면 이렇다. 그는 “3·1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세계의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힘 있는 나라가 되라’는 것입니다. 선열들은 독립선언서를 통해 나라를 빼앗긴 억울함과 약소민족의 서러움을 통곡하듯 절규했습니다. 오늘날 국제정세의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 어느 국가가 ‘강자의 선의’에 자신의 운명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는 조금이라도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한 사실이다. 일본은 한국을 병탄하기 직전에 청나라 및 러시아와 싸워 이김으로써(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정쟁) 경쟁국인 이들 두 나라를 한반도에서 밀어냈다. 일본은 또 영국과는 러시아를 겨냥한 영일동맹 체결(1902년)로, 미국과는 필리핀 지배권을 교환하는 카쓰라태프트 밀약(1905년)을 통해서 자신들의 대한제국 지배권을 주요 국가들로부터 인정받았다.
그리고 한국은 국제적으로 고립무원인 상황에서 경술국치를 당했다. 3·1운동 시기에도 이런 국제적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미국식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웠다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처리 과정에서도 한국 문제는 논외였다.
요즘 다시 경제와 외교에서 국제정세가 급박하다.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과의 한한령 철회 문제, 일본과의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교류, 미국과 유럽 등에서의 한류 전파 및 교류 등 주요 이슈가 산적해 있다.
결국은 우리의 주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의 한한령 철회 문제다. 중국이 조만간 한한령을 철회할 것이고 최근 일부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전언이 있기는 한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목소리도 많다. 이미 시진핑 등장 이후 줄곧 중국은 문화적으로 폐쇄정책을 유지하고 있고 또 2016년 사드보복 직전의 상황으로 회귀도 쉽지 않다.
중국의 한한령이 철회되면 좋겠지만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한한령으로 중국과의 문화교류가 막혔지만 그동안 한국문화는 중국 외 다른 곳에서 오히려 강력해지고 있다. 이제 아쉬운 것은 중국공산당이다. 우리가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고 이것이 좋은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여기에 일본과는 역사 문제로 여전히 논란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역사왜곡 태도는 단시간에 사라지지 않고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미국도 경제나 외교에 이어 문화교류도 순조롭다고 할 수 만은 없을 듯하다.
그나마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3·1절 기념사에서 산업경제력과 함께 문화경제력을 꼭 짚어 강조하는, 문화계로서는 반가운 이야기를 했다. 그는 “창의적 콘텐츠와 풍부한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한국의 매력을 알리는 소프트파워를 더욱 키워나가겠습니다. 음악, 영화, 드라마, 음식 등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는 K컬처를 활용하여 국가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발맞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지난 3월 6일 대한민국 중장기 문화비전인 ‘문화한국 2035’을 발표하면서 힘을 실었다. 12·3계엄과 탄핵 정국에서도 이런 정책들이 반갑다. 문제는 행동이다.
아쉽게도 지난해 결정된 올해 문체부 예산은 2025년 7조672억원, 전체 정부 예산의 1.05%에 불과하다. 작년의 비중인 1.06%보다 오히려 쫄아들었다. 올해 문체부 예산 자체는 작년보다 증가(1.6%)했지만 전체 정부 예산 증가율(2.5%)에는 따라가지 못했다. 즉 물가상승률보다도 문화재정 증가율이 작다. 결국은 문화 관련 예산이 줄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구호가 아닌 행동이 필요할 때다. 조만간 있을 추가경정예산(추경) 논의에서 문화의 몫을 확보해야 한다. 탄핵 상황이고 혹시 조기대선 가능성도 있을 수 있지만 문화정책은 흔들려서는 안된다. ‘말년병장’처럼 시간만 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독립을 이끈 백범 김구 선생은 자신의 저서 ‘백범일지’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뜻이 다시 복받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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