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가 처음 개최한 인공지능(AI) 생성 예술품 전문 경매가 작품 34점 중 28점을 총 10억 여원에 판매하는 고무적인 성과를 올렸다. 이번 경매는 6400명 이상의 예술가들이 경매 취소를 요구하는 공개 서한에 서명하는 등 큰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막상 대중들은 ‘AI 예술’의 가능성을 선택한 셈이다.
5일(현지 시간) 외신과 크리스티 등에 따르면 2월 20일부터 이날까지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 갤러리에서 열린 ‘증강 지능(Augmented Intelligence)’ 경매는 총 72만 8784달러(약 10억 5000만원)의 낙찰가를 기록하며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냈다. 경매에는 레픽 아나돌, 클레어 실버, 핀더 반 아르만, 헤럴드 코헨 등 AI 아트 분야에서 선구자로 꼽히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개인 사진과 선별된 콜라주 작품, 자작시 등 자신의 데이터를 사용해 AI 모델을 학습시켰고 회화와 조각, 디지털 아트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을 직접 경매에 출품했다.
경매 결과 총 34점 중 28점이 낙찰된 가운데 최고가는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이 AI로 생성한 ‘기계 환각(Machine Hallucinations) - ISS의 꿈 - A’가 차지했다. 국제우주정거장(ISS)과 인공위성의 데이터를 알고리즘으로 재구성한 역동적인 회화는 15만~20만 달러였던 추정가를 넘어선 27만 7200달러(약 4억 원)에 낙찰됐다. 경매의 하이라이트로 꼽혔던 홀리 헌든과 매트 드라이허스트의 2024년 휘트니 비엔날레 출품작 ‘임베딩 연구 1&2’ 역시 추정가 7만~9만 달러를 넘어 9만 4500달러에 팔렸다. AI 아티스트로 불리는 클레어 실버의 NFT(대체 불가능 토큰) 작품 ‘딸’도 낮은 추정가를 훌쩍 뛰어넘으며 4만 4100달러에 낙찰됐다. 다만 추정가(18만~25만 달러)가 가장 높은 작품 중 하나였던 핀더 반 아르만의 ‘이머징 페이스’ 연작 9점 등 일부 작품은 주인을 찾지 못했다.
이번 경매는 전 세계 6000명 이상의 예술가들이 취소를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하면서 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예술가들은 AI 모델이 저작권 있는 작품을 허락 없이 학습하는 상황에서 AI 생성 작품을 판매하는 것은 인간 예술가들의 창작물을 도용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크리스티가 이런 경매를 진행하는 것 역시 AI 기업들의 ‘절도’를 장려하고 예술가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반면 크리스티 측은 예술가들이 다른 예술가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AI는 단순히 창의성을 확장하는 도구로만 사용됐을 뿐”이라고 반박하며 경매를 강행했다.
‘AI 예술’에 대한 시선은 작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렸다. 경매에 참여한 작가 드라이허스트는 모든 AI 예술을 ‘절도’로 규정하는 비판에 대해 “문화가 어떻게 진화하는지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술가이자 로봇 공학자인 알렉산더 레벤 역시 NBC뉴스에 “기계적 수단을 사용해 예술 작품을 완성하는 작업에는 더 많은 예술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며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의 의도와 당신이 하는 일이며, 무엇이 공정한 사용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아티스트의 몫”이라고 말했다. 레벤은 이번 경매가 열린 뉴욕 전시장에 로봇을 설치해 100달러 입찰이 이뤄질 때마다 조금씩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경매가 끝날 무렵 8190달러 상당의 그림을 완성했다.
크리스티는 이번 경매를 통해 AI 예술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크리스티에 따르면 이번 경매 참여자 중 약 37%가 경매장에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었고 이중 절반가량이 밀레니얼과 Z세대였다. 크리스티의 디지털 아트디렉터인 니콜 세일즈 자일스는 “이번 경매에 대한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목격하는 것은 정말 고무적인 일이었다”며 “크리스티가 창의성의 미래에 대한 의미 있는 대화에 불을 붙일 수 있어 영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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