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신탁계약에서 관리비 부담 주체를 별도로 정하는 계약 조항을 신탁원부에 기재했더라도 수탁자가 이를 근거로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한 집합건물 관리단이 A신탁사를 상대로 낸 관리비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지난달 13일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사는 해당 건물을 소유한 B시행사와 신탁계약을 체결하면서 “B사는 건물의 보존 및 유지 등 관리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하고 세금과 공과금 등 비용을 부담한다”는 내용을 기재했다. 해당 내용은 신탁계약서에 포함돼 신탁원부에도 기재됐다. 이후 B시행사는 2019년 11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관리비 5500만 원가량을 연체했다. 집합건물 관리단은 시행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A사도 관리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쟁점은 신탁법에서 정한 대항력의 범위였다. 신탁법 제4조 1항은 “등기 또는 등록할 수 있는 재산권에 관해 신탁의 등기 또는 등록을 함으로써 그 재산이 신탁재산에 속한 것임을 제3자에 대항할 수 있다”고 정한다. A사는 신탁계약에서 관리비를 B시행사가 부담한다고 정했고 해당 내용이 신탁원부에 포함돼 부동산 등기됐기 때문에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1심·2심 재판부는 모두 A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신탁계약에서 관리비를 B시행사가 부담한다고 정하고 이 신탁계약서가 신탁원부에 포함돼 등기의 일부가 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신탁계약을 등기했다고 해서 계약서에 담긴 모든 내용을 제3자에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신탁법 제4조 1항에서 언급된 ‘제3자 대항’은 해당 부동산이 수탁자의 고유재산과 분별되는 신탁재산에 속한 것임을 대항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신탁계약의 내용과 관계없이 이 사건 관리비의 성격, 원고의 관리단 규약 등을 심리하여 피고가 관리비를 부담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