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 포지션”이라며 당의 핵심 기조에 영향을 주는 발언을 해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비명계 인사들이 ‘월권(김부겸),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없다(김경수), 실용노선 넘어서는 것(임종석)’이라며 격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중도성향 유권자 층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20%포인트로 벌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12·3비상계엄사태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에 추월당했던 민주당 지지율이 다시 역전에 성공해 확연히 벌어지자 우(보수)로 진격하는 이 대표의 중도보수정당 선언이 통했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30%대 박스권 정체를 겪은 이 대표의 지지율도 당과 함께 동반 상승하며 조기대선에 주도권을 쥘 수 있을까요.
우클릭에도 이재명 지지율 박스권
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12·3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 대표를 향해 언론은 ‘우클릭’행보를 시작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반도체특별법주52시간 예외조항, 상속세 공제한도 등 이 대표의 경제 이슈가 그렇게 보였던 셈입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흑묘백묘론’을 띄우고 대선 비전으로 ‘잘사니즘’도 제시했습니다. 실용에 무게를 두고 성장을 외친 것인데 중도확장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맞을 것입니다.
물론 이를 곱게 볼 리 없는 반대편은 ‘오락가락’행보라며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성남시장, 경기지사와 지난 직전 대선에서도 ‘경제’를 최우선으로 내세운 후보라는 점을 기억하면 우클릭이라는 규정 자체가 들어 맞지는 않지만 이 대표의 전략적 발언 역시 부족했다는 점에서 지지율 정체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갤럽은 이 대표에 대한 선호도가 3개월째 30%를 웃돌며, 최고치는 지난해 12월 37%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 한국갤럽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주간인 지난해 12월 1주차부터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이 대표의 지지율은 △12월 1주차 29%에서 상승해 12월 3주차 37%로 최고점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민주당 주도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다시 하락세를 기록한 뒤 30%박스권에 머물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러다 보니 일부 언론에선 이 대표의 우클릭을 ‘그다지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규정하고 나선 상태입니다. 그러면서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거둔 득표율 41.08%를 언급하며 이 대표의 30%대 박스권 지지율로는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습니다.
2017년 2월 문재인 32%·안희정 21%·이재명 8%
그럼 잠시 건국 이래 첫 대통령 보궐선거를 치러야했던 2017년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와 보궐선거 일정 등을 고려하면 당시와 현재 거의 유사한 일정이라는 점에서 한국갤럽 2017년 2월 4주차(2월 21~23일)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합니다. 각 정당의 후보가 결정되지 않은 시점의 자유응답을 통해 나온 결과 문재인 31%, 안희정 21%, 황교안 8%, 안철수 8%, 이재명 8%, 유승민 2% 순이었습니다.
이번엔 한국갤럽 2025년 2월 3주차(2월 18~20일)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재명 34%, 김문수 9%, 홍준표 5%, 한동훈 4%, 오세훈 4%, 조국·이준석 2%, 안철수·유승민 1%입니다.
당시 문재인 후보가 현재 이 대표 지지율보다 낮은 형편입니다. 즉 이 대표의 대선 승리가 불안하다면 30%박스권 지지율 보다는 안희정, 이재명 후보 같은 야권 인물이 안보인다는 이유가 더 타당해 보입니다. 2017년 야권의 단순 합산 지지율은 60%, 2025년엔 36%입니다. 36%에서 심지어 2%는 구속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지지율을 합친 것입니다. 눈을 씻고 봐도 이 대표의 중도보수 언급에 반발하는 김부겸, 김경수, 김동연, 임종석 이른바 야권 대선 잠룡이라는 인물들의 이름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野잠룡 깨우며 ‘캐치올파티’ 전략
대권을 꿈꾸지만 1%지지율도 나오지 않는 야권 인사들도 답답할 만 합니다. 국회에 군대를 동원해 유리창을 깨고 본회의장에 들어가려던 12·3비상계엄사태를 ‘계몽령’이라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의힘 일각의 인사들 만도 못한 지지율에 화살은 이 대표를 향하고 있습니다.
1극체제를 반성하고, 화합과 포용을 해야한다 주장하며, 팬덤을 질타합니다. 본인들이 무엇을 하겠다는 자기 말은 없는 형편입니다. 이를 이 대표도 모를 리 없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경선 후의 부작용도 뼈저리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 대표의 중도보수 발언은 경선 이후의 상황관리와 캐치올파티(특정한 계급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표하고자 하는 정당) 전략이 동시에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1% 지지율도 나오지 않는 대선주자들과 경선을 해봐야 컨벤션효과를 일으키지도 못할 상황인데다 경선흥행 참패가 본선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셈입니다. 중도보수 발언 이후 야권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정체성 논란에 뛰어들며 한 번이라도 언론에 이름이 오르고 있는 현실 자체가 ‘이재명이 이재명 하고있다’고 해석이 나옵니다. 특히 빠르게 극우화되는 국민의힘이 오른쪽을 비워주면서 보수 진격이 가능해진 정치 포지션의 여유도 이 대표의 부담을 줄어주고 있습니다. 좌쪽의 진보 진영의 깃발로 언제든 공격할 수 있었던 정의당의 당세가 예전같지 않은 것도 후방을 염려하지 않게 된 이유입니다.
결국 이 대표의 중도보수 발언은 8년 전 19대 대선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 외에 자신이 보다 더 선명성을 가진 후보로 시너지를 일으켰던 그 순간을 재연하기 위한 포석입니다. 왼쪽을 맡는 장수들을 믿고 이 대표가 오른쪽 적진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는 중인데 승리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2025년 2월22일부터 [송종호의 여쏙야쏙] 시즌2가 시작됩니다. 시즌1은 2020년 9월 30일부터 여·야의 속사정을 ‘쏙쏙’ 알기 쉽게 전달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해 2년 동안 총 50건의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이후 외교·통일을 포함한 경제관련 이슈까지를 포괄하는 시즌2를 약속했지만 3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늦어진 만큼 더욱 자주 독자들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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