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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여명]

초등학생도 총기사고 훈련하는 美

학교 내 사고는 공동체 무너뜨려

대전 초등생 살해, 학교 불신으로

안전과 교권 고려한 종합 대책 필요

'병든 학교' 위한 상담 인프라 구축


교장 선생님이 봉쇄 명령을 내리면 교사들은 즉시 교실 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에 있는 커튼을 쳐서 외부에서 교실 안이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은 웅크리고 앉아서 절대 소리를 내지 말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 시간에 화장실 등 다른 곳에 있던 학생은 가장 가까운 교실로 뛰어들어가 숨어야 한다. 미국 특파원으로 재직했을 당시 큰 아이가 전한 초등학교의 ‘록다운 드릴(Lockdown Drill, 봉쇄 훈련)’ 모습이다. 아이는 “가짜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에 무엇인지 모를 긴장과 공포가 있었다”고 했다. 미국 학교에서는 이런 식의 총기 사고 대응 훈련이 매년 2번가량 실시된다.

미국의 공립학교 교육 시스템은 우수하지만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 한편에는 늘 공포감이 자리잡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제는 미국인의 삶의 일부가 돼버린 총기 사고 때문이다. 미 연방 교육 통계에 따르면 2000~2022년 초·중등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총 328명(사망 131명, 부상 19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많게는 1년에 5~6번도 학교 내 총기 사고가 발생한다. 3년 전에는 텍사주 유벨디의 롭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숨졌다. 범인은 인근에 살던 고등학생이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미국은) 아이들이 총격범을 피하고 숨는 방법을 배우는 나라가 아니어도 된다. 무엇이든 제발 해달라”고 호소했으나 미 정치권은 여전히 총기 규제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학교와 학생을 대상으로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공동체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받는다. 텍사스 서남부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 유벨디는 사건 이후 여전히 지역 사회 전체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늑장 대응한 경찰에 대한 처벌, 사고 학교 철거 문제 등을 두고 집단소송과 이견이 제기되는 등 공동체 안에서 갈등도 생겼다. 지난해 사건 2주년을 맞아 열린 추모식에서 범인의 총을 맞았으나 기적적으로 생존한 롭초등학교 교사는 77분 동안 숨진 학생들의 사진 앞에 서있었다. 77분은 사건 당시 외부에서 머뭇거리고 망설이던 경찰이 교실로 진입해 범인을 마주하기까지 걸린 희생자들의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이달 10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8세 김하늘 학생을 살해한 사건은 미국의 학교 총기 사고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가장 안전할 것으로 믿었던 학교라는 공간에 공포감을 불러 일으킨 점, 둘째는 구성원들의 불신과 갈등을 키워 공동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학생을 보호해야 할 교사가 어린 학생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사실은 스승을 존경하는 오랜 문화적 전통을 가진 우리에게는 더 큰 충격을 안기고 있다. 정신질환, 동료 폭행 등 사전 징후가 있던 교사를 학생으로부터 빠르게 분리하지 못한 교원 관리 체계의 문제점도 이번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당장 교실과 학교 곳곳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는 등 교육 당국과 교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아우성친다. 교사와 학부모·학생이 서로를 불신하는 분위기 속에서 교육과 보육을 통해 공동체를 지켜온 학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는 힘들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교직 수행이 불가능한 교원을 직권 휴직시키는 내용 등을 담은 ‘하늘이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위험한 상태인 교사를 학생과 즉각 분리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통해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방안들이 가뜩이나 추락한 교권을 더 침해하고 정신질환 교사에 대한 마녀사냥 문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정신 상담 치료를 받을 경우 보호 받아야 하는데도 불이익을 염려해 실제 치료를 기피할 수 있다”는 교사노조의 주장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차제에 학교 내에서 교사와 학생의 스트레스를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광범위한 정신 상담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검토해봐야 한다. 학교폭력, 교권 침해, 따돌림 등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문제들이 ‘병든 마음’에서 시작되고 있다. 학교가 병들면 결국 가족도, 우리 사회도 병들 수밖에 없다.

윤홍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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