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해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 지위를 차지했다. 2023년 처음으로 세계 1위 LNG 수출국 자리를 꿰찬 데 이어 2년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 가스 패권을 노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 관세를 무기로 미국산 LNG 공급 확대에 나선 배경에는 에너지와 산업 안보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가스 전쟁’이 시작됐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미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LNG를 수출하는 국가다. 12일 로이터통신이 케이플러·LSEG·스태티스타 등 시장조사 업체를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8690만 톤에서 최대 9290만 톤의 LNG를 수출했다. 카타르(7700만 톤), 호주(7400만 톤) 등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로이터는 “미국이 2023년 사상 최초로 오른 최대 수출국 자리를 2년 연속 지킨 것”이라고 진단했다. 셰일 혁명으로 미국의 가스 생산능력이 극대화했지만 2022년 우크라이나전(戰) 발발 전까지 수출 규모가 3~4위권에 그쳤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무엇보다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산 가스 공급을 제한하며 생긴 공백을 미국이 발 빠르게 파고든 것이 주효했다. 20년 이상 장기 고정 계약을 맺어 매년 일정한 공급량을 유지해야 하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미국 LNG는 ‘목적지 제한’ 조항이 없어 수출국을 다양화할 수 있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아시아로 향하던 미국 LNG 화물선이 가스 부족에 시달려 더 비싼 가격을 제시한 유럽으로 향했고, 이로 인해 아시아 지역에 가스 수급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일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의 LNG 신규 수출 동결 조치를 해제할 정도로 화석연료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미국 에너지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미국이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장악할 때”라며 트럼프의 가스 패권 야욕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헤리티지재단이 트럼프의 취임에 맞춰 ‘미국의 에너지 지배(energy dominance)를 위한 시간이 왔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미 싱크탱크 대서양위원회의 글로벌에너지센터 창립자인 리처드 모닝스타는 “트럼프의 전략은 미국이 러시아의 글로벌 천연가스 영향력을 대체하고 에너지 패권을 잡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흐름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타깃은 중국과의 분쟁으로 전략적 요충지로 부상한 인도태평양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빌 해거티 공화당 상원의원은 아태 지역에서 미국산 가스가 러시아산을 대체하기 원한다는 트럼프의 의도를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본과 대만·인도가 미국의 관세 부과를 막을 카드로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앞다퉈 내놓은 것이 트럼프가 1기 때 가스를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던 데 대한 학습 효과라고 봤다. 또 머지않은 시점에 닥칠 세계적인 공급 초과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러시아 등 경쟁국보다 가스 공급량을 선제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가스를 에너지 안보 및 산업 안보의 지렛대로 적극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공지능(AI) 확대로 필수가 된 데이터센터의 안정적 가동을 위해서는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보다 가스가 훨씬 적합한 발전원이라는 측면도 트럼프의 가스 패권 전략에 녹아 있다는 분석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향후 데이터센터 전력원에서 가스가 60%를 차지해 재생에너지(40%)보다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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