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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새로운 검열의 시대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머스크 자금력까지 확보한 트럼프

과학자·법학자·정부기관 '입틀막'

언론·첨단기술 업계도 항복 선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으로 새로운 검열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기업·과학자와 도널드 트럼프 비판론자들이 갑자기 입을 닫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표현의 자유 복원 및 연방 검열 종료’라는 제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얼핏 보면 제1차 수정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진부한 립서비스처럼 들린다. 현실적으로 그의 행정명령은 정부와 민간 분야에서 잘못된 생각을 뿌리뽑겠다는 오웰리언식 노력의 시작을 의미한다.

가장 먼저 ‘입틀막’을 당한 것은 과학자들이었다. 독감이 유행하고 인수공통감염병 발병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정부 보건기관과 일반 대중의 소통을 전면 금지했다. 1952년 이후 처음으로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업데이트된 질병 발생률 및 사망률에 관한 주간 자료를 공표하지 않았다.

독립적인 보건 정책 연구기관인 KFF에 따르면 발표가 금지된 CDC의 자료는 조류독감에 대한 중요한 두 가지 연구 결과를 담을 예정이었다. 이러한 조치는 과학적 자료를 억누르던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코로나 팬데믹 접근법을 떠올리게 한다. 2020년 6월 트럼프는 “지금 바로 검사를 중단한다면 신규 코비드 확진 케이스는 설사 나온다 해도 극소수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가 입수한 메모에 의하면 에너지부 역시 장관 대행의 명시적 사전 승인을 받지 않은 일체의 대중 소통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노스캐롤라이나대의 한 법학자는 일정이 잡혔던 연방 변호사들과의 토론회가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독일 변호사들이 나치 국가 창설에 공모했다는 토론회 주제가 허구라는 극우 인사들의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연구 보조금 취소와 공적 개입 금지 등의 조치는 정부 구성원들의 이른바 ‘각성 상태’를 지워버리려는 노력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공무원들에게는 다양성과 형평성 및 포용(DEI)을 은밀히 지지하는 동료들을 고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최근 공표된 행정명령은 ‘무의식적 편견’과 같은 개념을 가르치는 공립학교의 경우 연방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공공기관들은 정부의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태도를 전환하고 있다. 미시간주립대는 매년 열렸던 음력 설맞이 행사를 갑자기 취소했다. 트럼프의 DEI 행정명령에 위배될 소지가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대통령과 그의 우군들은 민간기업들에 정치적으로 부정확한 가치를 인정하지 말라는 압력을 가했다. 예를 들어 19개 공화당 강세주의 법무장관들은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근거로 민간 소매 업체인 코스트코를 향해 다양성 실행 약속을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트럼프의 다른 우군들은 한때 진보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던 표현과 사상 검열에 앞다퉈 뛰어든다. 예컨대 댄 크렌쇼 공화당 하원의원은 애플 맵스에 멕시코만(Gulf of Mexico)을 트럼프가 원하는 ‘걸프 오브 아메리카(Gulf of America)’로 변경하지 않은 채 그대로 표기했다는 이유로 애플의 최고경영자에게 협박에 가까운 압력을 가했다. 구글 맵스는 트럼프의 요구에 일찌감치 굴복했다.

그러나 대통령인 트럼프는 마음에 들지 않는 담론을 냉각시키기 위해 새로운 법이나 법원의 결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론과 첨단 기술 업계는 이미 선제적으로 그들의 패배를 인정했다.

트럼프 당선 후 1개월 뒤 ABC뉴스는 그의 성 학대 관련 비방 소송의 법정 밖 타결을 위해 1500만 달러의 합의금 외에 소송 경비까지 지급했다. 메타도 트럼프의 페이스북 계좌를 정지시킨 것을 문제 삼아 그가 제기한 소송을 2200만 달러의 합의금 지급을 통해 마무리 짓기로 결정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밀워키 지방 뉴스 방송국의 기상캐스터는 최근 일론 머스크가 나치식 거수경례를 했다는 거짓 정보를 퍼뜨린 이유로 해고됐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머스크 역시 법적 조치를 통해 자신의 비판론자들의 입에 정기적으로 재갈을 물리려 시도했다. 이런 협박이 이전에 얼마나 위력이 있었는지 몰라도 머스크의 막대한 자금력에 정부 정책을 요리할 수 있는 능력까지 추가된 지금은 그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파급력이 강화됐다.

그렇다고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 트럼프는 머스크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자신을 언론 자유의 수호자라 생각한다. 트럼프는 최근 세계경제포럼에서 “우리는 미국의 언론 자유를 구했고 또 하나의 역사적 행정명령으로 이를 튼튼하게 지켰다”고 떠벌렸다. 이 정도면 언론 자유의 수호자이기는커녕 오히려 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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