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국가주석의 참석은 관례”라며 방한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12·3 계엄 사태에 따른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한국 국민들이 잘 해결할 지혜와 능력이 있다”며 “한중 관계의 안정성이 유지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한국 방문이 성사되면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4년 7월 이후 약 11년 만이 된다.
국회의장실과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헤이룽장성 하얼빈 타이양다오호텔에서 우 의장을 접견했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한국 국회의장을 만난 것은 2014년 12월 시 주석이 베이징에서 정의화 당시 국회의장을 접견한 후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령 사태 이후 시 주석이 한국 고위급 인사를 공식적으로 만난 것도 처음이다. 앞서 2023년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시 주석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회담한 바 있다.
우 의장은 시 주석에게 올해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해달라고 요청했고 시 주석은 “APEC 정상회의에 국가주석의 참석은 관례”라며 “관련 부처와 함께 참석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시 주석은 "올해는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이자 한국의 광복 80주년으로, 양국은 기념행사를 잘 치러야 한다"며 "(양국은) 상호 융합되고 호혜적인 경제·무역 관계를 심화해야 하고, 이는 양국 인민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고도 했다.
시 주석은 최근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등에 대해 “한국 국민들이 내정 문제를 잘 해결할 지혜와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중 관계의 안정성이 유지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시 주석에게 “한국은 불안정하지 않다”며 “한국인의 저력으로 어려움을 반드시 극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후속 협정을 위한 성과 도출을 기대한다”며 한중 교역 활성화,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 첨단 분야 협력 등을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시 주석은 “중국은 개방과 포용 정책을 굳건히 하고 있다”며 디커플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또한 시 주석은 자신이 동부 저장성 당 서기를 지내던 시절부터 인구와 면적이 비슷한데 경제력에선 차이가 있는 한국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방이 중국에 좋은 발전 전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우 의장은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중국 내 독립유적지 보존에 힘써 달라”며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과 송환에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시 주석은 “유해 발굴에 대해 몇 년 전 협조를 지시했다”며 “한국 측과 지속적으로 소통할 것”이라고 답했다.
우 의장은 “중국 측의 사증(비자) 면제가 상호 우호에 기여하고 있다”며 “한국도 관련 부처에서 깊이 검토하고 있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8일부터 일방적 비자 면제 대상국에 한국을 포함시켰으며 이를 다시 15일에서 30일로 확대했다. 이후 상하이 등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 수가 2배 이상 급증했다. 앞서 6일 우 의장과 국내 언론사 베이징특파원들 간 간담회에서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과 중국에서 연이어 APEC이 열리므로 그 기간만큼 임시적으로 비자를 푸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인 비자 면제가 현실화되면서 한중 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이밖에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과 관련한 논의도 있었다고 국회의장실은 전했다. 우 의장은 "한국에서는 중국의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문화 콘텐츠를 자유롭게 누리고 있는데, 중국에서는 한국 관련 문화 콘텐츠를 찾기 어렵다"면서 "문화 개방을 통해서 청년들이 서로 소통하고 우호 감정을 갖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문화 교류는 양국 교류에 매력적 부분"이라며 "(교류)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국회의장실은 전했다.
당초 우 의장과 시 주석의 만남은 오후 4시 30분(현지 시각)부터 15분 정도일 것으로 알려졌으나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42분간 진행됐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양국 주요 관심사를 서로 이야기하며 자연스레 회담 시간이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우 의장은 자오러지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초청으로 이달 5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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