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와 고금리 등 여파에 침체를 겪던 서울 빌라(다세대·연립)·오피스텔 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크게 하락한 매매가격에 저점 인식이 퍼지고 있는 데다 월세 가격이 치솟으면서 수익성이 높아진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3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9~12월 서울의 빌라 매매 거래량은 8500건으로, 전년 동기(7873건)보다 8% 증가했다. 지난해 12월 매매수급지수는 97.1로 전세사기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인 2022년 5월(96)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지수가 0에 가까울수록 수요보다 공급이 많고 200에 가까울수록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매가격지수(2021년 6월=100)도 99.16으로 4월부터 8개월 연속 상승했다.
특히 업무지구와 가까운 도심권과 동남권의 매매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중구 신당동 A빌라 전용면적 39㎡(3층)는 지난해 말 3억 8000만 원에 팔렸다. 같은 주택형(2층)이 지난해 5월 2억 7000만 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해 1억 원 이상 뛰었다. 송파구 잠실동 B빌라 전용 29㎡도 지난해 11월 7개월 전보다 4000만 원 오른 2억 9700만 원에 매매 거래됐다.
오피스텔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서울 오피스텔 매매가격은 0.05% 오르며 상승 전환한 데 이어 4분기에도 0.02% 뛰었다. 거래량은 지난 9월 715건에서 매월 늘어 12월에는 919건을 기록했다. 용산구 ‘용산파크자이’ 전용 33㎡는 지난해 말 3억 8500만 원에 팔렸다. 같은 해 2월 같은 주택형이 3억 3000만 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해 5000만 원 이상 뛰었다.
빌라와 오피스텔 매매가가 뛴 가장 큰 요인으로는 월세 상승이 꼽힌다. 지난해 서울 빌라 전·월세 거래량 13만 5980건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54%에 달했다. 이는 전년(48%)대비 6%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전세사기로 인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지속되면서 전세에서 월세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빌라 월세가격지수도 지난해 12월 104.93으로 23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서울 오피스텔 수익률은 4.9%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개발 대상지가 확대된 것도 빌라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정비사업 요건 완화를 통해 재개발 가능지를 기존 484만㎡에서 1190만㎡로 확대하는 내용의 정비사업 지원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노후 빌라가 많은 광진구 중곡동과 중랑구 중화동, 강서구 화곡동 등을 중심으로 재개발에 착수하는 곳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지난해 서울에서 빌라 매매 거래량이 가장 많은 자치구는 강서구(2491건)다. 은평구(2442건), 광진구(1642건), 중랑구(1505건) 등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수도권 전용 85㎡ 이하, 공시가격 5억 원 이하 빌라를 한 채 보유한 사람도 청약에서 무주택자로 간주하기로 한 것도 매수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앞으로 전세대출이 점차 까다로워지면서 비아파트의 월세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다만 입지에 따라 매매가격 상승 폭은 크게 차이가 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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