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2기 첫 관세 전쟁의 목표로 미국의 제조 허브 역할을 하던 캐나다·멕시코·중국 3개국을 선택한 것은 ‘제조업을 미국으로 가져오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공언해온 ‘미국 우선주의’를 위해 적대 국가로 취급하는 중국은 물론이고 이웃 동맹국까지 목표로 삼는 새로운 국면의 무역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우악스러운 관세정책이 소비자물가 인상은 물론이고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커지고 있다. 미 자동차 빅3의 공급망은 북미 3개국 전체에 걸쳐 촘촘히 구축돼 있으며 식탁물가와 직결된 농산물 수입 역시 캐나다·멕시코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미국 내 경제학자들은 “물가 쇼크, 기업 수익성 악화로 인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정책에도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백기 투항’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중국 등도 고강도 관세에 대한 대비를 해왔다는 점 역시 주목해볼 변수다. 왕이웨이 중국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중국도 8년 전과 같은 중국이 아니다”라며 “오랫동안 준비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예상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협상할 수밖에 없었던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는 달리 세계 각국이 보복관세 등 대응 매뉴얼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캐나다와 멕시코는 준비했던 대응을 즉각 발표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3주 뒤부터 1550억 캐나다달러(약 155조 6000억 원) 상당의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으며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도 “플랜B 시행을 지시했다”며 즉각 보복관세에 나섰다.
동맹국과 경쟁국을 가리지 않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경우 세계경제 타격은 더욱 커진다. 세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10%의 보편관세를 매기면 세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2%포인트 감소하지만 각국이 보복관세에 나서면 0.3%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관측했다.
당장 캐나다와 멕시코는 경제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루포파이낸시에로바세의 분석가인 가브리엘라 실러는 “25%의 관세가 유지된다면 멕시코 경제는 심각한 침체에 빠질 수 있다”며 “신규 외국인 직접투자가 멈추고 페소화 가치는 기록적 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역시 타격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비영리 싱크탱크 택스파운데이션은 이번 조치에 따라 미국 가구당 세금 부담이 연간 830달러(약 121만 원) 더 늘어날 것으로 봤다. 자동차나 식탁 물가도 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울프리서치는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 부과로 미국 수입차 평균 가격이 3000달러(약 418만 원) 더 비싸질 것으로 추산했다. 두 나라에서 수입하는 자동차 부품이 매년 970억 달러에 이르기 때문이다. 기름값도 불안하다. 유가 정보 업체 OPIS는 앞서 캐나다산 원유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중서부 지역의 유가가 15~20센트 오른다고 추산했다.
특히 식품 물가는 미국 소비자들의 체감물가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미 농무부·세관 통계를 보면 2023년 미국의 농산물 수입액(1959억 달러) 가운데 절반가량인 860억 달러어치가 멕시코·캐나다에서 왔다. 이 가운데 야채는 3분의 2가, 과일과 견과류의 절반은 멕시코에서 들어왔다.
특히 미국의 수입 물량 중 아보카도는 90%가 멕시코산이며 원유는 56%가 캐나다산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북미 이코노미스트 폴 애시워스는 “이번 관세로 연준이 앞으로 12~18개월 동안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창구가 닫혔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이번 관세 조치로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0.7%포인트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일각에서는 관세가 시행되는 4일 이전에 당사국 간의 물밑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바클레이스의 중남미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가브리엘 카시야스는 “왜 당장, 아니면 내일 관세를 시행하지 않을까”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 전에 대가를 원하는 듯하다”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불법 이민자의 본국 송환에 대한 비(非)협조를 이유로 콜롬비아에 고율 관세를 즉각 부과했다가 9시간여 만에 보류한 바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