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도 워싱턴DC 인근에서 29일(현지 시간) 발생한 여객기와 군용 헬기 충돌·추락 사고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고는 2001년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여객기 관련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일각에서는 관제사 부족으로 빚어진 인재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사고 책임을 전임 행정부로 돌리면서 참사를 정치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존 도널리 워싱턴DC 소방서장은 30일 기자회견에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구조 작전에서 수습 작전으로 전환하는 시점에 있다”며 “현시점에서 이번 사고의 생존자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공식 밝혔다. 사고 발생 직후 현장에 300여 명을 급파해 밤샘 생존자 수색 작업을 벌여왔지만 생존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29일 오후 8시 53분께 워싱턴DC 인근 로널드레이건공항에 착륙 중이던 아메리칸항공 자회사 PSA 여객기가 미 육군 헬기와 충돌해 포토맥강에 추락했다. 사고 당시 여객기에는 승객과 승무원 총 64명이, 헬기에는 군인 3명이 각각 타고 있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시신은 29구로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구조 당국은 생존 가능한 시간을 추락 이후 최대 90분으로 보고 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미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이날 사고 현장에서 조종석 음성 녹음 등이 담긴 블랙박스와 헬기 잔해를 수거해 조사에 들어갔으며 30일 이내에 예비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숀 더피 미 교통부 장관은 두 항공기 모두 표준 비행 패턴으로 비행했으며 통신에 차질이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고의 원인이 인재일 가능성이 지적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사고 당시 2명이 아닌 1명의 관제사가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며 이 상황에 대해 “정상적이지 않다”고 분석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관제사 부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미 연방항공청(FAA)에 따르면 약 3000명의 관제사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몇몇 공항에서는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초과근무와 주 6일 근무를 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사고 지점인 로널드레이건공항은 군과 민간이 시설을 공유하면서 극심한 혼잡으로 여러 차례 충돌 우려가 제기되던 곳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붐비는 로널드레이건공항의 주 활주로는 일일 800회 이상의 이착륙이 이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브리핑에서 헬기 조종사들과 항공교통관제사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버락 오바마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FAA가 인력 관련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을 추진하면서 항공 안전 역량을 약화시켰다며 “이번 사고는 느슨한 안전기준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이 상식적인 평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권 단체와 민주당 측은 참사를 정치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이번 참사는 2001년 11월 존F케네디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아메리칸항공 여객기가 이륙 직후 인근 주택가로 추락해 260명 전원이 사망한 이래 24년 만에 인명 피해가 가장 큰 항공기 사고로 기록됐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