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김해공항에서 발생한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의 원인으로 휴대용 보조 배터리 발화가 지목되고 있다. 당국이 정확한 화재 원인 조사에 나선 가운데 뒷좌석 선반 위 탑승객 짐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내 반입이 허용된 리튬이온 배터리 관리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30일 부산경찰청·부산소방재난본부·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 감식을 위한 사전 회의를 진행한 뒤 합동 감식 일정을 항공유 제거 여부를 결정한 후로 미룬다고 밝혔다. 항철위는 항공기 양쪽 날개에 3만 5000파운드의 항공유가 실려 있어 추가 화재 가능성이 있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28일 오후 10시 15분께 김해공항 주기장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홍콩행 에어부산 항공기에서 불이 나 승객과 승무원 등 176명 전원이 비상 탈출했다.
이번 화재 원인으로는 항공기 반입이 허용된 탑승객 물품 가운데 화재 위험성이 가장 높은 리튬 배터리가 거론된다. 여객기에서 불이 났을 당시 한 승객이 찍은 사진을 보면 짐을 보관하는 선반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붉은 화염이 일렁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선반에 이미 불길이 상당히 커진 상황을 볼 때 승무원이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화 지점이 선반으로 추정되는 만큼 탑승객이 들고 탈 수 있는 보조 배터리나 전자담배 등 전자기기 등에서 불이 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김해공항 측에 따르면 불과 한 달여 전인 지난달 12일에도 에어부산 BX142 항공기에서 보조 배터리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승객 1명이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리튬 배터리 기내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기내 반입 물품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부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기내 배터리 화재는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혔던 2020년부터 2022년까지 2건에 불과했지만 2023년 6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1~8월까지 5건을 기록했다. 항공 위험물 운송 기준에 따르면 리튬메탈 배터리와 리튬이온 배터리는 위험물로 분류돼 기내 휴대나 위탁 수하물 반입이 기본적으로 금지된다. 하지만 탑승객의 사용 목적으로 리튬메탈 배터리의 리튬 함량이 2g 이하이거나 리튬이온 배터리가 100Wh 이하인 소량에 한해서는 운송이 허용된다.
항공기 화재 당시 승객이 직접 비상 탈출문을 개방하는 등 승무원의 미흡한 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복수의 승객들은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에어부산 측에서 비상 탈출을 위한 안내를 하지 않아 탑승객이 직접 비상문을 열어 탈출을 시도했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 업계의 종사자들은 비상 상황에서 임의로 문을 개방할 경우 비상 탈출용 슬라이드 고장과 추락 사고 등 더 큰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비상 상황임에도 일부 탑승객이 짐을 가지고 탈출을 시도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항공기 화재가 발생하면 ‘90초’ 이내에 탈출해야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는데 좁은 공간에서 짐을 옮길 경우 대피 시간이 지체될 수 있다.
더구나 이번 화재가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가 일어난 지 불과 한 달 만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저비용항공사(LCC)에 대한 안전 관리 기준 강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LCC의 항공 정비 인력은 대형항공사(FSC)에 비해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항공정보포털에 따르면 2023년 제주항공·에어부산·이스타항공 등 10개 LCC의 정비 인력은 1664명으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두 회사의 정비 인력(3963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모두 항공기 1대당 16명대의 정비 인력을 확보한 반면 10개 LCC의 항공기 1대당 평균 정비 인력은 11.02명에 불과했다. 화재 사고가 발행한 에어부산의 항공기 1대당 정비 인력은 8.23명에 그치기도 했다.
항철위는 전날 회수한 블랙박스 분석과 합동 감식을 통해 화재가 발생한 원인 등을 규명하는 것과 별개로 사고 항공기 승무원들을 상대로 비상 사고 매뉴얼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했는지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 항공기를 제작하고 설계한 국가가 사고 조사에 참여한다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에 따라 프랑스 사고 조사위원회 관계자 10여 명도 이날 김해공항에 도착해 사고 조사에 참여했다.
에어부산 측은 여객기 화재 사고와 관련해 사과하고 사후 대응에 나섰다. 최근 에어부산을 그룹사로 편입한 대한항공도 현장에 임원을 파견하고 임시 항공편을 마련하는 등의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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