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1조 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고환율과 원자재 값 상승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현대건설과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 모두 해외 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을 내 최악의 어닝쇼크를 기록하며 23년 만에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 말 이한우 대표이사가 취임한 이후 첫 발표한 실적에서 대규모 손실을 반영한 것으로, 일각에서는 전임 최고경영자에게 누적 손실을 넘기는 ‘빅배스(Big Bath)’를 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손실이 1조 2209억 원으로 전년(7854억 원 흑자)과 비교해 적자 전환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22일 공시했다. 2001년 워크아웃 신청 당시 3826억 원의 영업손실을 낸 후 연간 기준으로 23년 만의 적자 전환이다. 지난해 당기순이익도 7364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현대건설과 연결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주요 해외 프로젝트에서 일시적으로 발생한 비용이 손실로 반영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이 2019~2020년 인도네시아에서 연이어 수주한 발릭파판 정유공장 프로젝트와 2021년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공동 수주한 사우디아라비아 자푸라 가스플랜트 사업에서 1조 원대의 손실이 발생했고 이를 지난해 실적에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기본 도급액이 4조 원 수준인 발릭파판 정유공장을 수주한 현대엔지니어링은 공사 원가 급등으로 공사비 증액을 요청했지만 발주처인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회사 페르타미나가 받아들이지 않아 대규모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발주한 자푸라 가스플랜트 사업에서도 인건비·공사비 급등과 공기 지연 등으로 추가 비용이 늘어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별도 기준으로 보면 현대건설은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이 1923억 원이었는데 4분기에 3646억 원의 손실 반영으로 지난해 전체 1723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1조 원 대의 영업 손실을 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추후 발생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손실분까지 선반영한 것으로 향후 발주처와의 협의 결과에 따라 손실 규모는 줄어들 수 있다”며 “프로세스를 재점검하고 공정 관리를 강화해 수익 정상화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대건설은 다만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대형 원전 설계, 부산 괴정 5구역 재개발 등 굵직한 사업을 수주해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10.3% 늘어난 32조 6944억 원을 기록했고 연간 수주액도 30조 5281억 원으로 목표치인 29조 원의 105.3%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매출 목표치로 30조 3873억 원, 수주는 31조 1412억 원, 영업이익은 1조 1828억 원으로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규모 손실 반영이 지난해 말 나란히 취임한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이사,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 사업의 잠재적 손실은 언젠가 실적에 반영해야 하는데 경영진 교체 시기에 전임 최고경영자에 부진한 경영 성과를 돌리는 빅배스를 단행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건설·증권 업계에서는 실적 발표를 앞두고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경영진 교체에 따른 빅배스를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한 건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손실을 미리 실적에 반영하면 교체된 최고경영자는 부담을 덜고 업무를 할 수 있고, 향후 실적 개선도 더 쉽게 이뤄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건설 외 다른 대형 건설사들의 지난해 실적도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대우건설의 지난해 매출액은 10조 4421억 원, 영업이익은 3571억 원으로 전망된다. 2023년 영업이익이 6625억 원을 기록했던 점을 고려하면 반 토막인 셈이다. GS건설은 지난해 매출액 12조 7375억 원, 영업이익 3179억 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지난해 9월 전망치였던 매출액 12조 9199억 원, 영업이익 3630억 원보다 낮아진 수치다. 같은 기간 DL이앤씨에 대한 지난해 실적 전망치 역시 영업이익은 2916억 원에서 2717억 원으로 눈높이가 하향 조정된 상태다. 영업이익은 2023년 대비 20%가량 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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