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6일(현지 시간) 사임 의사를 공식 밝혔다. 총리에 오른 지 9년 만이다. 장기적인 고물가와 이민 문제 등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온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에 이어 캐나다마저 리더십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미국과 이탈리아를 제외한 주요 7개국(G7) 국가들이 전례 없는 정치적 혼란에 휩싸이는 양상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뤼도 총리는 이날 캐나다 오타와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 총리 및 집권 자유당 대표가 선출되면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 투쟁을 통해 (나 자신이) 다음 선거까지 자유당을 이어갈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해졌다”고 사임 배경을 설명했다. 조만간 새 자유당 대표가 선출돼 차기 총선을 준비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뤼도의 사임은 일찌감치 예견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트뤼도 총리의 지지도는 최근 역대 최저치인 17%까지 떨어지면서 더 이상 정권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내몰렸다. 최근에는 연립정부를 구성해온 신민주당(NDP)과 자유당 내에서도 총리 사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는 단연 경제 문제가 꼽힌다. 캐나다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고물가, 주택 가격 상승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쌓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진보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트뤼도 총리는 이민에 대한 반발, 팬데믹 기간 동안 치솟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분노 등에 휩쓸린 서방의 가장 최근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관세 엄포에 대한 대응을 놓고도 논란이 확산됐다. 트럼프의 25% 관세 부과 엄포에 트뤼도 총리가 지난해 11월 말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전격 방문했지만 ‘미국의 51번째주가 돼라’는 트럼프의 조롱을 받자 캐나다 내부의 비판 여론이 고조됐다. 트뤼도 총리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재무장관조차 “총리가 값비싼 정치적 속임수를 선택했다”며 지난해 12월 돌연 사퇴하면서 총리 퇴진 압박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리더십 위기에 직면한 곳은 캐나다만이 아니다. 독일은 ‘신호등 연정’ 붕괴에 이어 지난해 12월 16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사회민주당·SPD)가 독일 연방의회에서 불신임됐다. 차기 총선은 올해 2월로 앞당겨졌다. 프랑스 하원은 지난해 12월 5일 미셸 바르니에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해 프랑스에서 62년 만에 총리가 불신임으로 물러났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수아 바이루 민주운동당 대표를 후임 총리로 임명했지만, 정국 혼란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7월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당이 패배하면서 14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졌지만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자민당도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참패하며 15년 만에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이처럼 선진국 클럽이 줄줄이 정권 교체와 리더십 위기에 처하는 배경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속된 고물가와 이민자 유입, 급증한 재정 적자 등이 지목된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보편 관세를 언급하고, 캐나다에는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미국과 나머지 G6 사이의 분열 양상도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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