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기 집권 등 국제 정세가 격랑에 휩싸인 가운데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안 국회 가결로 대한민국 외교가 표류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외교부를 이끌었던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18일 서울경제신문에 “권한대행 체제라고 먼저 위축되면 한국에 문제가 있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 국제사회에 더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초대 국가안보실장으로 한미 동맹 강화의 주춧돌을 놓은 김성한 고려대 경제기술안보연구원장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어야 한다”며 “우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대응한 대북 담당 특사 임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윤 대통령 취임 11일 만에 성사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의 주역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 직무 정지와 트럼프 당선인의 복귀로 미북 대화에 한국이 패싱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김 전 실장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외교 전 장관급이든 차관급이든 실무 접촉을 통해 사전 조율이 이뤄질 텐데 리처드 그리넬 대북 특사의 카운터파트를 지명해 준비하고 있으면 필요한 순간 미국과 함께 북한을 접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전 장관은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을 언급하지 않는 현 상황을 두고 ‘의미를 잘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실용적이고 거래를 중요시하는 스타일이어서 다른 나라의 내부 문제에 덜 관여하는 성향이 있다”며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필요한 협의와 협상은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히려 선제적으로 미국 내 여론 주도층도 만나 우리의 입장과 논거를 일관되게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실장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대기업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달 7일 윤 대통령과 나눈 첫 전화 통화에서 조선업을 콕 집어 언급한 것이 의미심장하다고 평했다.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에 더해 기업들이 갈고 닦아온 트럼프 당선인과의 네트워크가 1기 시절에도 빛을 발한 만큼 주미 한국대사관과 함께 곧 출범할 트럼프 정부와의 소통 채널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김 전 실장은 미 공화당과 민주당을 아우르는 인맥을 자랑하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 겸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트럼프 정부와 연결하는 역할에서 주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윤 전 장관은 8년 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회고하며 “렉스 틸러슨 미국 전 국무장관을 2017년에 세 번이나 만나고 기시다 후미오 전 외교장관 등과 접촉을 이어가는 등 탄핵 정국에도 외교장관으로서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틸러슨 장관의 2017년 3월 방한 당시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우리 측 입장을 문서로 만들어 전달했고 4월 유엔 외교장관회의에서도 한국 입장을 설명한 결과 안보회의 결과에도 반영됐다”면서 “정부가 최대한 나서겠지만 기업인과 여야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함께 나서주면 외교부의 노력을 상당히 보완해줄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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