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을 열흘 앞두고 현재 공석인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권을 놓고 정면 충돌했다. 국민의힘이 돌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나서자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늦추기 위한 “궤변”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여당이 끝내 협조하지 않으면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단독 개최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리는 등 여야 간 수싸움이 치열해지면서 헌재의 탄핵심판 일정도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은 대통령 궐위가 아닌 직무정지 상태이기 때문에 대통령 권한대행은 탄핵심판 결정 전까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4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윤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에 놓였지만 궐위 상황은 아닌 만큼 권한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논리다. 현재 헌재는 9명의 재판관 중 국회 추천 재판관 3명이 공석으로, 민주당은 후보자 임명 절차를 추진 중이다.
국민의힘은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2017년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의 사례를 들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박한철 전 헌재소장의 임기가 만료되자 황 전 권한대행은 곧바로 후임을 지명하려 했지만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강하게 반대했다. 이에 임기가 한 달가량 남은 이정미 전 재판관이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아 ‘8인 체제’로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진행했다. 황 전 권한대행은 헌재에서 탄핵안이 최종 인용된 후 이 전 재판관 후임으로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했다. 권 권한대행은 당시 추미애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야당이 “황 권한대행의 임명권 행사는 민주주의 훼손”이라고 반발한 점을 앞세워 이번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즉각 “여당의 탄핵심판 절차 지연 작전”이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이 과거 발언을 인용한 추 의원은 “당시 박 전 소장은 대통령 추천으로 들어온 사람으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기 때문에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당연한 논리를 이야기한 것”이라며 “그때와 상황이 다른데도 국회 추천 3인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해 권한대행이 임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내란의 후속이자 지속적 선동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도 “국회에서 3인을 추천하면 대통령은 임명 절차만 진행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구질구질한 탄핵 지연 작전을 포기하라”고 쏘아붙였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 역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형사재판 지연을 강력 비판하면서 신속 진행돼야 한다고 외치더니 왜 윤 대통령 탄핵 재판은 지연하려고 하냐”며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꼬집었다. 여기에 헌재까지 이날 “과거 황 전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선임한 사례가 있었다”며 사실상 대통령 권한대행도 재판관 임명이 가능하다는 민주당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민주당은 국회 추천 몫 3명의 재판관 임명 절차를 서두르겠다는 계획이다.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의 협조가 없으면 18일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특위를 열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이 특위 구성을 거부하면 당장 18일 특위를 꾸린 뒤 빠르면 이번 주에라도 후보자 청문회를 개최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임명권 행사 불가’ 입장을 고수하며 특위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어 야당의 인사청문회 단독 추진을 놓고도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헌재는 탄핵소추 의결서 접수 13일 만인 이달 27일 첫 변론기일을 열고 윤 대통령 탄핵 심리를 시작한다. 내년 4월 18일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의 퇴임을 고려해 재판을 신속히 진행할 계획이다. 재판부는 현재 ‘6인 체제’에서 추가 재판관 선임 없이 탄핵 결정이 가능한지도 논의 중이다.
당장 야당 단독 처리 법안들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한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 논란까지 겹치며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 권한대행은 이르면 19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양곡관리법 등 6개 쟁점 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국회를 통과한 ‘내란 일반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도 이날 정부로 이송됐다. 양곡법의 경우 정부가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해온 만큼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쓸 가능성이 높지만 특검법은 윤 대통령 탄핵과 맞물려 거부권을 발동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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