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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 간이식'이 준 기적…"시한부 아기, 서른 됐죠"

국내 첫 생체 간이식 주인공 이지원씨 30주년

30년전 서울아산병원서 간 일부 이식

첫돌도 안된 아기, 수술로 새 생명

'생체 간이식' 누적 7300건 넘어

난도 높은데도 1년 생존율 98%

의료진 "환자의 눈부신 생명력 덕"

국내 첫 생체 간이식 주인공인 이지원(가운데) 씨가 당시 집도의였던 이승규(왼쪽)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 주치의인 김경모 소아소화기영양과 교수와 함께 생체 간이식 30주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30년간 건강하게 자라줘 고맙습니다.”

“두 분께서 저에게 30년을 선물해주신 걸요. 감사합니다.”

8일 서울아산병원 1층 로비에 모인 세 사람이 밝은 미소를 띤 채 감사의 인사를 주고받았다. 국내 첫 생체 간이식의 주인공으로 올해 서른 살이 된 이지원 씨와 당시 집도의였던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 주치의인 김경모 교수의 이야기다.

이 교수는 1994년 12월 8일 수술대에 오르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선천성 담도 폐쇄증으로 간이 딱딱하게 굳어가던 9개월 아기에게 아버지의 간 4분의 1을 이식했다. 동물실험을 마치고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쳤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이 국내에서 시도된 적은 없었다. 지금은 간이식 분야 세계 석학이 된 이 교수를 포함해 서울아산병원 의료진 모두 아기의 간에 새로운 혈관을 연결하고 혈류를 개통한 순간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아기의 작은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무사히 간으로 흘러들어 뱃속에 이식된 창백한 간이 붉게 물들었다. 국내 첫 생체 간이식이 성공했음을 확인한 의료진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995년 5월 주치의인 김경모(왼쪽 두 번째) 교수 등 의료진이 생후 15개월이던 이지원 씨의 퇴원을 축하해주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는 선천성 담도 폐쇄증에 따른 간경화로 첫돌이 되기도 전에 죽음 앞에 놓였던 아기가 국내 처음 시도된 생체 간이식을 통해 서른 살의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고 16일 밝혔다.

간은 건강한 상태라면 60~70%를 잘라내도 다시 재생이 된다. 주로 혈연관계로부터 간의 일부를 공여받는 생체 간이식은 환자 입장에서 뇌사자의 장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돼 병세 악화를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뇌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간 손상 위험이 없어 이식받는 간도 우수한 편이다. 다만 뇌사자 간이식에 비해 수술 난도와 합병증 발생 위험이 크다 보니 높은 생존율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더 많은 말기 간질환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간이식의 85%를 생체 간이식으로 시행해왔다. 최근 5년간 시행한 생체 간이식만 연평균 400건에 달한다. 이 씨의 소아 생체 간이식 성공 이후 지금까지 성인(7032명), 소아(360명)를 합쳐 7392명이 이 병원에서 생체 간이식을 받고 새 삶을 찾았다. 국내는 물론 세계 최다 기록이다. 난도 높은 환자가 대부분인 데도 서울아산병원의 전체 간이식 생존율은 1년 98%, 3년 90%, 10년 89%로 매우 높다. 간이식 역사가 오래된 미국 피츠버그 메디컬센터,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메디컬센터의 간이식 1년 생존율이 평균 92%라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우수한 성적이다. 최근 10년간 생체 간이식을 받은 소아 환자 93명의 생존율은 1년 100%, 5년 98.6%로 100%에 가까웠다. 간이식·간담도외과와 소아외과·소아소화기영양과·마취통증의학과·중환자실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수술 전후 유기적으로 협진하는 집중 관리 시스템이 그 비결로 꼽힌다. 김 교수는 “소아 환자는 간이식에서 접하는 일반적인 문제 외에도 영양, 성장 및 발달 지연, 예방접종과 다양한 감염 노출 문제 등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며 “국내 첫 생체 간이식을 받은 아기가 유치원에 입학하고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다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성인으로 성장한 것은 이식 의료의 성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자 앞으로 이식을 받을 아이들과 가족에게 큰 희망을 주는 귀중한 증거”라고 말했다.

1998년 당시 유치원생이던 이지원(오른쪽) 씨와 집도의였던 이승규 교수.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간 기증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복강경과 최소 절개술을 이용한 기증자 간 절제술은 기증자들의 회복 기간을 단축시키고 흉터를 최소화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 왔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간을 기증한 사람 중 사망하거나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이 교수는 “이러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절체절명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간이식팀 의료진이 뭉친 덕분”이라며 “아기를 살리겠다는 마음만으로 의료진의 도전에 큰 용기로 응하고 아기에게 간을 내어줬던 부모와 환자들의 눈부신 생명력도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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