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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美 제조업 부활 파트너로 첨단산업 협력…韓 저성장 탈출 기회로”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트럼프 1기보다 센 통상 압박 예고, ‘윈윈’ 방안 찾아야

조선 협력에다 AI 등 美 원천기술 들여와 산업 고도화

미중 갈등에 공급망 격변, CPTPP 가입 등 방어벽 시급

정치 혼란에 협상력 하락…경제 관료들이 중심 잡아야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미 통상 전략에 대해 “미국 제조업 부활의 핵심 파트너가 되겠다는 메시지를 주면서 한국 산업의 고도화를 통한 저성장 탈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내년 1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글로벌 무역 전쟁이 본격화하면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내수에 이어 수출까지 동반 부진에 빠지면서 1%대 저성장이 고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설상가상으로 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 따른 국정 리더십 공백과 정치 불안이 현실화하고 있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미 통상 협상 때 관세 등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우리 산업의 경쟁력과 기업 역량을 바탕으로 미국 제조업 부활의 핵심 파트너가 되겠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대신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저성장 탈출의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그는 최근 계엄 사태, 탄핵 정국에 대해 “대미 통상 협상의 선택지를 좁히는 등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도 “경제 관료들이 국가 경제를 이끈다는 사명감 아래 중심을 잡고 비상한 각오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을 종합 평가한다면.

△트럼프의 경제정책 방향은 관세, 감세, 화석연료 공급 확대, 반(反)이민 등 크게 네 가지다. 외교·안보 쪽은 전쟁 종식, 우방국의 안보 비용 부담 요구 등 두 가지다. 트럼프는 이런 공약으로 표를 받았다. 우리 입장에서는 관세 부과, 반도체 등 특정 산업의 보조금 철폐 또는 감축,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인상 요구와 북미 간 직접 대화 등이 도전 요인이다.

-트럼프 1기 때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트럼프는 지난 대선과 달리 이번에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이겼고 공화당은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국민들로부터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실현을 위한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생각한다. 또 집권 1기 때와 달리 트럼프를 견제할 이른바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이 사라지고 내각과 백악관이 충성파로만 채워졌다. 1기 때보다 더 자신감을 갖고 본인의 공약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이 격화되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7%가 증발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는 매우 세속적이면서 사업가적 기질을 갖고 있다. 좋게 얘기하면 실천적이고 실용적이다. 트럼프는 일단 관세 카드 등으로 강하게 질러 압박한 뒤 협상하는 스타일이다. 협상은 결국 ‘기브 앤드 테이크(주고받기)’다. 미국 산업계와 소비자 단체, 정치권 청원 등 국내적 요인도 고려해 예외 조항을 만들어갈 것으로 본다. 보편 관세 등을 공약대로 했다가는 미국 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미 통상 전략에 대해 “미국 제조업 부활의 핵심 파트너가 되겠다는 메시지를 주면서 한국 산업의 고도화를 통한 저성장 탈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미중 무역 갈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이 ‘디리스킹(위험관리)’이라면 트럼프 행정부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추구할 것으로 본다. 미국과 중국의 GDP를 합치면 전 세계의 거의 절반에 이른다. 양국이 디커플링을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화 시대의 공급망은 크게 훼손될 것이다. 미중 간 양자 관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트럼프는 1기 때도 대중 관세 전쟁을 벌었는데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에너지 등을 사기로 한 합의안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불신하고 있다. 외교·안보 질서나 패권 다툼의 측면에서도 대충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

-중국이 당하고만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중국의 반격 방법은 두 가지다. 우선 자국 시장 내에서 미국 기업 제재, 핵심 광물 수출 통제 등 1대1 대응이다. 트럼프 1기 때보다 중국의 맞대응 강도가 셀 것이기 때문에 양국이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본다. 또 중국은 유럽연합(EU), 중남미, 글로벌사우스(제3세계 개발도상국) 등과의 공조를 통해 미국 포위망을 뚫으려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국이라는 큰 경제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전체 또는 일부가 빠져나가면 공급망이 툭툭 끊어져 상품 생산이 어려워지는 극단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또 미국은 중국 첨단산업 견제를 위해 우리에게 반도체 등의 대(對)중국 거래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강화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일본·EU·캐나다·동남아·글로벌사우스 등에서 공급망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자기 편에 서라고 압력을 가할 텐데.

△호혜와 평등이 대외 정책의 기본 기조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견지해가면 미국과 중국 모두 대놓고 반박하기 어렵다. 큰 틀에서 그 원칙을 지킨다면 워싱턴·베이징과의 갈등도 관리 가능할 것으로 본다.

-한국도 지난해 기준 미국의 여덟 번째 무역 적자국인데.



△중국·멕시코 등에 비해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무역 적자 개선 요구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가장 크게 시비를 걸 수 있는 분야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대미 흑자가 급증한 자동차다. 트럼프 1기 때는 재협상을 통해 한국산 경트럭의 관세 폐지 기간을 2041년까지 연장하는 것으로 끝났는데 이번에는 더 강하게 나올 수 있다. 또 미국은 한국과 관세·쿼터 등에 대해 협상한 뒤 합의가 될 만하면 한미 FTA를 개정하려 할 것이다. 미국이 무역 대상국을 A·B·C 등의 그룹으로 나눠 관세나 수입 쿼터를 차별화하는 방안도 예측해볼 수 있다. 결국 협상 국면이 올 것으로 본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국 경제의 위기감이 크다.

△우리 인생살이나 기업 경영을 보면 위기가 왔을 때 돌파구를 찾으면 기회가 오고는 한다. 평온할 때는 오히려 기회가 오지 않는다. 8년 전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때에 비해 미국 내에서 우리 기업의 위상이 엄청나게 올라가 있다. 미국과 새로운 협력 기반을 만들어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 미중 무역 분쟁의 틈새를 파고들어 석유화학 등의 분야에서 중국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대미 통상 협상의 기본 방향은.

△미국은 농업·제조업·서비스업·첨단산업 등의 순으로 경제가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제조업이 피폐화됐다. 트럼프는 자동차·철강 등 제조업 근로자들의 소외감에 불을 확 질러 대통령에 두 번이나 당선됐다. 우리가 미국 제조업 부활의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기조하에 윈윈의 길을 찾아야 한다. 또 우리 기업들이 현지 투자를 통해 고용 창출 등 미국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현지 공장을 지은 곳이 모두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선벨트(남부) 등 공화당 우세 지역이다. 그런 점을 잘 활용해 협상을 대결이 아닌 협력의 분위기로 바꿔야 한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미 통상 전략에 대해 “미국 제조업 부활의 핵심 파트너가 되겠다는 메시지를 주면서 한국 산업의 고도화를 통한 저성장 탈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구체적인 한미 산업 협력 방안이 있다면.

△우선 우리가 덜 팔기보다는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를 더 사오는 것이다. 다음은 선박 건조, 군함 유지·보수·정비(MRO) 등의 분야에서 산업 협력이다. 미국의 국가 안보와 직결되고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다. 소형모듈원전(SMR), AI, 5G·6G 통신, 우주·항공 등의 첨단산업에서 미국의 원천 기술을 들여와 한국 산업의 고도화를 추진할 수도 있다. 방위산업 협력도 당연하다.

-유럽 등과 국제사회 공조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자간 모임에서 미국을 비판할 수 있지만 합심해서 적대화하는 것은 모든 나라가 꺼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질서 수립 과정에서 각국의 이해관계를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었다. 또 ‘라이크마인드(유사 입장)’인 국가들과 분야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가령 핵심 광물은 동남아, AI·하이테크는 EU와 협력하는 방안 등이다.

-구체적인 지역 협력 방안이 있다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는 미국과 중국이 빠진 채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가입한다면 지역 공급망을 만드는 데 분명히 효과가 있다. 다만 한미 FTA 체결 때와 마찬가지로 농축산물 시장 개방 확대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국내에 그런 정치적 파고를 넘을 만한 에너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미 무역 흑자국인 일본과 공동 대응하는 방안도 있다. 일본과 함께 미국 LNG를 들여와 극동과 동남아를 아우르는 국제적인 에너지 비축망을 만드는 것이다. 대미 협상력이나 프로젝트 무게감이 커지고 한미일 협력이라는 명분도 있다.

-우리가 미국의 방위비 분담 인상 요구에 응하는 대신 자체 핵 잠재력을 확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갈수록 북한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은 우리 안보의 근간이지만 그것만 믿어서는 안 된다. 안보 전체에서 우리의 오너십을 확장해야 한다. 그런 방향으로 정치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방위비 인상, 핵 잠재력 확장 등의 논의가 진전될 수 있다.

-최근 국내 정치 혼란이 대미 통상 교섭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우리 기업과 시장에 활력이 있으면 통상 협상 때 플랜 A·B 등 여러 방안으로 대응할 수 있다. 반면 경제가 어렵고 기업들이 불확실성 속에서 우왕좌왕하고 정부 리더십도 실종되면 대처 능력과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 관료들이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직분을 다해야 할 것이다.

◆He is…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사범대 부속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외교통상부 지역통상국장,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고위관리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한국 측 수석대표를 맡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진두지휘하면서 ‘검투사’로 불렸고 2007~2011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장관급)을 지냈다. 제19대 국회의원(새누리당), 현대자동차그룹 특별자문역,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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