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은 경상북도 영주 무섬마을 내 대표적 고택인 만죽재 고택과 해우당 고택을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져 온 관련 유물들과 함께 국가민속문화유산 ‘영주 만죽재 고택 및 유물 일괄(榮州 晩竹齋 古宅 및 遺物 一括)’, ‘영주 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榮州 海愚堂 古宅 및 遺物 一括)’로 각각 지정했다고 3일 밝혔다.
만죽재 고택은 조선시대 병자호란 이후인 1666년(현종 7년) 반남박씨 박수(1641∼1729)가 무섬마을에 입향하면서 지은 고택으로, 입향조로부터 13대에 이르기까지 장손이 360년간 집터와 가옥을 온전히 지켜오며 큰 변형 없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고택의 ‘ㅁ’자형 평면 형태는 조선 중·후기 상류주택을 대표하는 유교적 종법질서의 표현 방법으로서 중요한 건축적 특징이며, 경북 북부지방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뜰집의 전형적 형태이다. 교육과 시문학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고택 뒤 섬계초당은 내성천과 무섬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8년 새롭게 복원되어 역사적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고택과 함께, 만죽재 현판과 원본글씨, 문방사우(종이·붓·먹·벼루), 여물통, 통나무계단 등 생활 민속유물이 잘 남아 있으며, 대표적인 유물인 역대 혼서지, 항일의병격문집, 호구단자, 승경도 등을 포함해 ‘영주 만죽재 고택 및 유물 일괄(榮州 晩竹齋 古宅 및 遺物 一括)’로 지정됐다.
이와 함께 해우당 고택은 무섬마을의 선성김씨 입향조 김대(1732∼1809)의 손자인 김영각(1809∼1876)이 1800년대 초반에 건립한 것으로 전하며, 그의 아들인 해우당 김낙풍(1825∼1900)이 1877∼1879년에 고택을 중수(重修)한 이후로는 해체수리 공사가 없었기 때문에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고택은 ‘ㅁ’자형 뜰집으로, 안방에서 태어나서 목방, 작은사랑, 큰사랑, 빈소방으로 옮겨가는 생애주기와 생활을 유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크다. 특히, 침수가 잦았던 무섬마을의 환경적인 결점을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해 야외에 장독을 두지 않고 장독 보관을 위한 장고방을 따로 두고, 성주단지를 부엌이나 마루가 아닌 높은 다락에 둔 점, 높은 다락을 많이 만들어 수납공간으로 사용한 점 등은 자연환경을 잘 극복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고택에는 출신 인물들의 학문적 깊이와 주변 인물과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다량의 고도서와 고문서 및 서화류, 탁본, 글씨 등의 자료가 전해지고 있으며, 해우당과 대은정의 현판 및 글씨, 김낙풍이 작성한 과거답안지, 성주단지, 갓함 등 유물을 포함해 ‘영주 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榮州 海愚堂 古宅 및 遺物 一括)’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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