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원두 가격이 47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가뭄과 폭우 등 기후변화가 원두 생산지를 덮치면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진 데다 ‘관세맨’을 자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를 앞두고 물량을 미리 비축하려는 움직임까지 더해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국내 식품 업계 역시 원두 가격 상승에 대응해 가격 인상에 잇따라 나서면서 고물가로 가뜩이나 힘든 소비자들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27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시장에서 고급 품종으로 분류되는 아라비카 원두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4.5% 상승한 파운드당 3.26달러(약 4549원)를 기록했다. 1977년(3.38달러) 이후 47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올 들어 상승 폭은 70%에 달한다. 인스턴트 커피나 블랜딩에 사용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로부스타 원두 가격 역시 연일 상승세를 이어갔다. 로부스타 원두 선물 가격은 이날 톤당 5547.50달러로 거래를 마쳤는데 연초(1월 2일 기준 3010달러) 대비 84% 넘게 폭등한 수치다.
올해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가 심화하면서 커피 원두 생산지의 수확량이 급감한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풀이된다. 아라비카 원두 최대 수출국인 브라질은 덥고 건조한 기후가 지속돼 올해는 물론 내년과 내후년에도 생산량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로부스타 품종은 최대 생산국인 베트남에서 악천후가 계속되면서 3년 연속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8~9월 사이 7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10월에는 폭우가 이어지며 원두 등 작물들이 큰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토마스 아라우조 스톤엑스 트레이딩 연구원은 “올해 안에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커피 업계는 패닉 상태”라고 말했다.
강경한 관세정책을 예고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비해 업체들이 선제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원두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트럼프는 재임 시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20%의 보편관세를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네덜란드 라보방크의 카를로스 메라 농산물 책임자는 “관세가 부과되기 전에 (미국) 커피 업체들이 많은 물량에 대한 수입을 시도하고 있다”며 “소비자가격은 지금보다 훨씬 비싸질 것”이라고 했다.
국제 원두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국내 식품 업계도 커피 제품 가격을 잇따라 인상하고 있다. 동서식품은 이달 15일 인스턴트커피와 믹스·음료 등의 제품 출고가를 평균 8.9% 올렸다. 맥심 모카골드(리필 500g)는 1만 7450원에서 1만 9110원으로, 같은 브랜드 커피믹스(2.16㎏)는 2만 3700원에서 2만 5950원으로 인상했다. 동서식품은 커피 음료인 맥심 티오피(275㎖)와 맥스웰하우스(500㎖) 가격도 각각 110원씩 높였다. 커피 프랜차이즈도 가격 인상에 나섰다. 앞서 올 8월 스타벅스코리아는 커피 음료 그란데(473㎖) 사이즈와 벤티(591㎖) 사이즈 가격을 각각 300원, 600원씩 올렸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원두 가격 상승분이 통상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손익에 반영된다”면서 “올해 4월께부터 원두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고 당시 구매 가격이 하반기에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국제 원두 가격 오름세가 지속될 경우 다른 식품 제조사들과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도 시차를 두고 가격을 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식품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부터는 원두 가격 부담이 본격적으로 가중될 것”이라면서 “이미 올해 한 차례 제품 판매가를 올린 업체들은 소비자 반발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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