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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김의 역사에서 동시대 미술로…'판화 오디세이'

세종문화회관 기획전 '판화 오디세이'

국내외 작가 33명 120여점 작품

목판인쇄술 역사부터 예술 판화까지

주제 다양·기법 확장 판화의 역사

김준권 '산운(山韻)-2301(Blue Mt.)' 전시 전경.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본은 8세기 중엽 신라에서 만들어진 국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석가탑으로도 불리는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내 사리공에서 발견됐는데, 탑이 751년 불국사 중창 당시 세워졌으니 그 안에 봉안된 유물도 1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도 우리 유산이다. 1377년 고려 시대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됐고,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인쇄술은 판화의 발전과 밀접하다. 판화란 나무·금속·돌·고무 등의 판에 그림이나 글을 새겨 판을 만든 다음, 잉크·물감 등을 칠해 종이나 천에 찍어내는 그림을 말한다.

세종문화회관에서 2025년 1월 5일까지 열리는 특별기획전 '판화 오디세이' 전경.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이 기획해 세종미술관 1·2관에서 열리고 있는 ‘판화 오디세이’가 조선시대 목판 등 유물로 시작하는 이유다. 어쩌면 우리는 ‘판화의 민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뿌듯한 ‘새김의 시작’이다.

인쇄술로, 기록의 목적으로 이어진 판화가 본격적 예술의 한 장르가 된 것은 1950~60년대 미술대학에 ‘판화과’가 생기면서부터다. 판화가 다루는 주제도, 기법도 다양했다. 전시의 두 번째 섹션 ‘자연의 숨결’에서는 자연을 주제로 한 14명 작가의 40여 점 작품이 선보였다.

‘다색목판화의 대가’로 불리는 김준권은 너비 총 620㎝의 5폭짜리 대작에 한국의 산하를 펼쳐놓았다. ‘산운(山韻)-2301’은 코앞의 짙푸른 산이 시퍼렇다 파랗게, 멀어질수록 점점 옅어지다 하늘빛으로 녹아드는 장엄한 풍광이다. 목판화의 특성을 활용해 공기원근법(색채원근법)을 탁월하게 변주했다.

김승연 'Night Landscape-9712'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류블랴나 국제판화 비엔날레(1993), 프랑스 샤셀 국제판화 비엔날레(2015)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판화 거장 김승연은 불빛이 화려한 도시 야경을 흑백의 메조틴트 판화로 표현한 ‘나이트 랜드스케이프(Night Landscape)-9712’를 내놓았다. 이상국의 목판화 ‘홍은동에서Ⅲ’에는 빽빽한 도시의 삶이 풍경으로 녹아들었다.

판화는 그림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대중문화와도 밀접했다. 짧은 생을 작가로 살았고, 민중을 향한 예술을 지향했던 화가 오윤에게는 소통이 중요했기에 판화가 용이했다. 오윤의 대표작 ‘애비’가 전시에 나왔다. 길가다 갑자기 멈춰 선 부자(父子)의 모습, 아이의 어깨를 감싼 아버지의 불거진 손이 엄혹한 시대상을 드러낸다. 목판에 칼질을 새기고 판 칼 맛의 선이 일품이다.



오윤 '애비'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오윤이 정통판화라면 권순왕은 변형판화다. 엄밀히는 판화와 설치미술을 융합했다. 물 먹인 목화솜 위에 배추 씨앗을 심어 강아지의 형태를 만들었다. ‘자라나는 이미지-달마시안’이란 제목처럼 새싹이 자라난다. 이처럼 고정관념에 묶이지 않는다는 점도 판화의 매력이다. 1970년대 실험미술로 이름을 떨친 김구림은 일상적 사물을 작업에 활용했다. 출품작 ‘옷솔과 다리미’는 말 그대로 옷솔과 다리미 이미지를 고스란히 차용했다. 배남경의 경우 한글의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목판화로 표현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속 하늘, 별, 바람, 꽃 등의 글자에 따스한 마음이 담겼다.

권순왕 '자라나는 이미지-달마시안'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배남경 '하느님이 보우하사'(왼쪽) 등이 출품된 특별기획전 '판화 오디세이' 전시 전경.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총 6개 섹션으로 이뤄진 전시의 후반부 ‘혼돈 속 질서’에서는 추상적 표현에 집중했고, 마지막 ‘개념의 무한함’에서는 다양한 재료와 매체로 확장된 판화의 신개념을 보여준다. 서효정 작가는 코딩을 활용한 디지털 아트를 선보였다. 김노암 미술평론가는 “판화는 하나의 이미지나 패턴을 조각한 후, 그 조각판을 이용해 여러 번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기술인데, 이와 유사하게 ‘코딩’도 기본적으로 어떤 패턴(알고리즘, 코드 구조)을 만들고 그 패턴을 컴퓨터가 여러 번 반복적으로 실행하거나 복제하도록 하는 과정”이라며 코딩과 판화가 패턴 생성과 복제라는 유사성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한국 작가 외에 알렉스 카츠, 우고 론디노네, 프랭크 스텔라, 아니쉬 카푸어 등 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동서양 판화들의 여러 면모를 비교하며 감상하라는 의도다.

'판화 오디세이' 전시 전경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술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에 걸맞게 뛰어난 판화 작가들이 많지만 판화는 여전히 대중에게 다소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장르”라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 판화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예술적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5일까지다. 연계 프로그램으로 ‘판화 인쇄 체험’과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및 연말 판화 카드 제작 체험’이 준비돼 있다.

'판화 오디세이' 전시 전경.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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