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 한국 핵무장 논의 흐름에 결정적인 한 해가 될 수 있다는 외신 분석이 나왔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23일(현지시간) “1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핵무장 논의는 금기시됐지만, 현재 한국인 대다수가 자체 핵 개발을 지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국 여론에 영향을 미친 첫 번째 요인은 북한의 핵 위협이다. 더 타임스는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가속화,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강화가 한국 내 핵무장 논의를 부추기는 배경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위협이 미국의 확장 억제에 대한 신뢰도를 약화시키고 있다고도 봤다. 특히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서 한국에서는 ‘멀리 있는 아시아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자국 도시가 핵공격을 받을 위험을 감수할 미국 대통령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타임스는 이런 상황을 1961년 프랑스의 핵무장 결정 당시에 비유했다. 당시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뉴욕을 파리와 맞바꿀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처럼 현재 한국인들은 ‘로스엔젤레스(LA)나 시애틀을 서울과 맞바꿀 미국 대통령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정치 상황 변화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통적인 동맹관계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인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는 한국에서 위기의식이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트럼프는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부르며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약 14조원)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향후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연계해 주한미군 감축 내지 철수 카드를 거론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한국의 핵무장이 현실화할 경우 정치적, 실질적 장애물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와 미국과의 동맹 균열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NPT 가입국이 핵무기를 개발할 경우 해당 국가에 대해 제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글렌법(Glenn Amendment)’에 따라 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한국이 자체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미국의 핵우산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동북아 안보지형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봤다. 일본도 자체 핵무장을 검토하려 할 것이고, 나아가 대만, 베트남 등으로 핵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핵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는 “한국은 자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지만 큰 비용과 희생을 동반할 것이고, 미국과 협력해 핵우산 아래에 남을 수도 있다”며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더 타임스는 갤럽코리아의 최근 여론조사를 인용, 한국인의 73%가 자체 핵무기 개발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핵무장에 따른 비용과 복잡성이 설명되면 찬성 비율이 40% 아래로 떨어진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병에서 풀려난 지니처럼 한국의 핵무장을 둘러싼 논의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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