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된 후 트럼프 2기 행정부 주요 인사들의 면면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차기 트럼프 행정부 임기는 4년이지만 중기적으로는 2년 후 열릴 연방 하원 선거에서 다시 승리해 공화당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초기 2년 동안 업적 정당화(performance legitimacy)를 위해 모든 정책 메뉴를 파상적으로 선보일 것이다. 이 중 확실한 하나는 대중국 정책이다.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말했던 관세를 높이고 최혜국대우(MFN) 박탈과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 철회, 그리고 첨단기술 수출통제 등 가용한 경제적 수단을 통해 중국의 힘을 최대한 빼고자 할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종식을 포함한 미러 관계 등 외교적 수단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중국은 트럼프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봐왔고 차기 트럼프 정부 출범에 대비해 다양한 정책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협력하면 상생하고 대립하면 손해라는 점에서 올바른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트럼프 당선인에게 축전을 보냈지만 오직 충성심만으로 뽑은 차기 트럼프 내각을 보면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자국 제조업의 대외 의존을 낮추고 기술 자립도를 상당한 수준으로 높여왔다. 앞으로 갈륨과 게르마늄 등 핵심 광물자원을 전략적 지렛대로 사용하거나 미국과 유럽의 공조 약화를 활용하는 한편 글로벌 사우스(북반구 저위도나 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 등 제3시장을 적극적으로 파고들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민주주의 쇠퇴와 깡패국(bullying)이라는 내러티브를 강화해 자국의 취약해지는 체제 정당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이다.
사실 미국이 냉전기 소련과 다른 중국을 완전한 디커플링으로 쓰러뜨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기 트럼프 정부도 거래주의적 특징 때문에 대중국 정책에서 일정한 성과를 냈다고 판단하면 맞춤형 통제 등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고 중국도 관세와 협정 등 숫자와 문서로 만든 협상은 오랫동안 체득한 노하우가 있다. 중국은 대형 쇼핑리스트를 만들어 미국과 거래하고 적극적 기업공개(IPO)의 도입과 회사채 발행을 하는 한편 파격적 토지 제공 등 외자 유치를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미중 관계는 한반도와 한중 관계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차기 트럼프 정부는 방위비 협상,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통해 경제적 국익을 최대화할 것이고 현실적으로 한반도 비핵화 대신 핵 군축과 북미 대화 등 새로운 방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조 바이든 행정부와는 달리 한국 외교의 정체성과 충돌하면서 정책 균열이 나타날 수 있는 부문이다.
중국도 한반도 비핵화 해법, 상대적으로 소원해진 북중 관계, 미러 관계가 중러 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서 한중 관계를 정책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15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2024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한중 정상회담도 개최했다. 여기서 한중 정상은 당장 풀기 어려운 구조적 갈등은 미뤘지만 일단 한반도의 긴장을 낮추기 위해 ‘안정’이 필요하다는 공동 인식 속에서 외부로부터 오는 압력을 줄이고자 했다. 올 들어 한중 간 고위급 소통과 전략대화의 재개, 지방정부와 의회 교류의 활성화, 기술 협력을 통한 제3시장 개척과 부분적 무역통상의 회복, 그리고 8일부터 시행된 한국인에 대한 일시적 무비자 정책 등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한중 양국은 새로운 미중 관계의 쟁점을 최대한 피하면서도 디지털과 에너지 전환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찾아야 한다. 중국의 협력 없이 한국이 막힌 시장과 기술 경쟁력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것도 불편한 진실이다.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중국에 몸을 숨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중국으로 열린 기회의 창을 마냥 닫아두기도 어렵다. 미국 대선이 끝났으나 불확실성이 해소되기는커녕 새로운 불확실성이 시작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것이 아니라 기민하게 몸을 움직여 틈새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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