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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미룰 수 없는 '고준위방폐물특별법'

김창락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총장 직무대행





오늘날 세계 각국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정성 확보라는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전쟁과 유가 불안정으로 인한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많은 나라가 원전을 다시 주목하고 있다. 원자력 에너지는 대규모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족하면서도 탄소 배출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기후 위기 해결의 중요한 대안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원전의 잠재력을 논할 때 반드시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처리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에서 연료로 사용된 후에도 매우 높은 열과 방사능을 지니고 있어 장기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사용후핵연료를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이라 분류하는데 사람과 환경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고준위방폐물은 자연 상태로 안정화되기까지 10만 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며 긴 시간 동안 안전하게 격리하고 관리할 방법이 필요하다. 현재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해결 방법으로는 심층처분방식이 있다.

심층처분방식이란 방사성폐기물을 지하 수백 미터 깊이의 암반에 매립해 장기간 안전하게 격리하는 기술이다. 이 과정에서 다중 방벽 시스템을 구축해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이동하는 것을 차단하고 공학적 설계를 보완해 추가적인 안전성을 확보한다. 심층처분방식은 국제적으로도 가장 안전한 고준위방폐물 처리 방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이 방식으로 고준위방폐물을 처리하는 심층처분기술 분야의 선도국가다. 특히 핀란드의 온칼로의 경우 지하 500m 깊이의 암반에 방폐물을 매설하는 세계 최초의 심층처분시설이 있으며 2025년부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온칼로 방폐장 프로젝트는 핀란드 정부와 지역 사회가 서로 협력해 완성한 대표적 모범 사례로 방폐장 문제 해결에 있어 사회적 신뢰와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 모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국가 주도로 심층처분기술을 연구해 왔다. 하지만 아직 방폐장 부지 선정 단계에도 진입하지 못한 상태다. 우리의 처분 기술이 아무리 실력과 안정성을 충분히 갖췄다고 하더라도 방폐장 문제는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고준위방폐물 처리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의 도덕적 책임과 합의가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회적 합의와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회적 신뢰와 이것을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고준위방폐물특별법은 이러한 해결에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장치다. 사회적 신뢰는 투명하고 적극적인 소통, 그리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다. 법적 기반이 없으면 아무리 기술적으로 안전하고 전문성을 갖춘 상태라 하더라도 지역 사회와의 대화나 협력을 시작할 수가 없고 지역 주민과의 소통이 있더라도 이것을 실행에 옮길 제도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 수용성을 얻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와 관련 기관은 법적 장치를 마련한 후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지역 수용성을 확보하고 책임 있는 문제 해결을 이행하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후손들에게 안전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만일 우리 세대가 원전의 혜택은 다 누렸으면서 그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처리 책임을 미래 세대에 떠넘긴다면 이는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고준위방폐물특별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며 우리 세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필수 과제다.

앞서 강조했듯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도덕적 책임과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는 복잡한 문제다. 고준위방폐물특별법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법안의 제정과 실행을 통해 우리 세대가 원전의 부산물을 책임 있게 처리해 미래 세대에게 위험이나 부담으로 남겨지지 않도록 지금 선택해야 한다.

더 이상 지연할 시간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원전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법적 장치를 마련할 때다. 고준위방폐물특별법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기를 강력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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