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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에너지가 여는 한·일 '기회의 창'[로터리]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





지난주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제31회 한일재계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에서 한경협과 일본 게이단렌은 양국의 공동 번영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협력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서를 채택했다. 특히 지속 가능한 사회 구현을 위해 수소와 암모니아를 비롯한 청정에너지의 생산·수송·활용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양국의 탄소 중립 실현과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 확보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수소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수소차 시장 확대 △수소 공급 설비 확충 △기술표준화를 위한 협력도 추진하기로 했다.

암모니아는 사실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분야다. 최근 수소가 탄소 중립을 위한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여기에 암모니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청정수소를 경제적으로 생산·운송하기가 쉽지 않고 특히 수소의 대량 운송이 어려운 과제인데 최근 암모니아를 활용한 수소 운송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일 양국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재생에너지 여건이 좋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대규모의 수소를 해외에서 도입해야 한다. 일본은 물론 한국 역시 지리적으로 북쪽이 막혀 있는 사실상의 섬이라 청정에너지 조달을 위해 해상운송에 의존해야 한다는 공통의 과제를 안고 있다. 탄소 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양국이 같은 고민을 하고 연구와 투자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협력을 통한 시너지가 기대된다. 특히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일찌감치 수소를 국가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적 수단으로 설정한 바 있어 최적의 협력 파트너이다.



또 한일 협력을 통해 높은 초기 투자 비용과 생산 및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암모니아를 활용한 수소의 국제 교역은 이제 파일럿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단계이다. 한국은 주요 건설사 및 석유화학 기업과 석유공사 등이 적극적으로 수소·암모니아 무역 프로젝트에 나서고 있고 일본의 경우 주요 종합상사와 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 등이 프로젝트 수행의 주체이다. 따라서 수소 생산 단가가 저렴한 제3국에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진출해 대규모 물량을 도입한다면 비용 절감 효과가 클 것이다.

한일 협력은 양국이 신산업에 대한 국제표준 설정을 포함한 다양한 이니셔티브를 선도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기도 하다. 수소·암모니아 산업은 발전 초기이다 보니 생산 공정별 탄소 집약도 계산 방법 등 국제표준이 아직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국제표준을 어떻게 설정하는지가 향후 세계 각국이 탄소 중립 사회로 전환하고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세계화와 글로벌 공급망이 급속히 확산하는 데 기초가 됐던 신자유주의 시대가 가고 이제는 보조금 전쟁과 산업 정책의 부활로 대표되는 자국 중심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 무역 체제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미중 패권 경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시기에 신산업 분야에서 국제표준과 무역 규범을 누가 제정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를 우리 혼자서 주도할 수 없다면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파트너와 힘을 합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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