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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다시보기] 인생은 아프고 예술은 고독하다

심상용 서울대학교 미술관장

카미유 클로델 ‘성숙(1897년·청동)’.




‘성숙(1893년)’을 만들 무렵 카미유 클로델은 스물아홉 살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중년의 남성은 오귀스트 로댕임이 분명하다. 그는 이미 노파의 수중에 들어가 있고 그를 붙잡으려는 젊은 여인의 두 팔은 허공을 가를 뿐이다. 클로델에게 ‘성숙’은 로댕과의 사랑 외에도 다른 두 불행의 씨앗이 됐다. 하나는 클로델로서는 첫 번째였던 이 작품의 주문이 로댕의 압력을 받은 정부에 의해 취소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작품으로 가장 아꼈던 남동생 폴이 클로델의 곁을 떠나게 됐다는 것이다.

로댕과 폴, 이 두 남성이 연인과 누이로서 클로델을 대했던 방식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클로델을 더 나락으로 떨어트렸던 것은 남동생 폴의 매몰찬 공격과 저주였다. 당대의 존경받는 시인이자 훗날 아카데미프랑세즈의 회원이 되기도 했던 폴은 한때 누이 클로델의 재능을 깊이 존경했지만 누이의 작품 ‘성숙’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유부남과의 불륜도 모자라 벌거벗은 채 비굴하게 사랑을 구걸하는 누이의 모습에서 씻을 수 없는 굴욕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폴은 신이 허락한 재능을 낭비하고 스스로 비극을 자초한 누이를 증오하면서 클로델로부터 영원히 멀어져갔다.



로댕의 정부, 시인 폴의 부도덕한 누이로서 클로델은 그렇게 역사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1970년대를 기점으로 클로델의 예술 세계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클로델은 스승과 가족 그리고 당대의 미술사가들로부터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그 결과 심신이 피폐해졌지만 그 와중에도 참으로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세계를 완성했다. 오늘날 ‘성숙’은 이전의 어떤 조각가도 성취하지 못했던 섬세하고 정직한 감정 표현, 비극 속에서도 그 향기를 내 품는 시적(詩的) 감동으로 프랑스를 넘어 19세기 인물 조각의 신기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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