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만 등이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전력망 확충에 총력을 쏟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송전선로 건설 지연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4년 2월 시작된 경북 영주(풍기) 분기 송전선로 건설 사업의 준공 시점을 내년 말에서 2년 더 연장하겠다는 한국전력의 신청안을 최근 승인했다. 이 지역 일대에 강철 보강 알루미늄선 13.35㎞를 깔고 철탑 29기를 세우는 이 프로젝트는 ‘한전이 공사비 절감을 위해 토지 소유주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풍기읍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착공이 늦춰졌다. 소형모듈원전(SMR)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경북 경주시 양북 분기 송전선로 건설 사업은 5년 5개월이나 늦춰지게 됐다.
전국 곳곳에서 지역 주민 반발로 송전선로 건설이 지연되고 있다. 그런데도 여야가 문제 해결의 관건인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제정을 미적대면서 송전선로 건설 지연은 고질화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월 확정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주요 전력망 사업 31건 중 12건이 지연되고 있다. 지연 사유는 △지역 주민 민원 5건 △인허가 지연 4건 △시공 여건 2건 △고객 사유 1건 등으로 사실상 지역 민심이 국가기간전력망 건설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대만은 2022년 9월에 전력망 확충에 10년간 5645억 대만달러(약 24조 원)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최근 일본은 2030년까지 전국 곳곳에 대형 변전소 18곳을 신·증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도 뒤늦게나마 송전망 건설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골자로 하는 전력망 특별법 제정과 동해안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수도권으로 끌어오는 ‘전기 고속도로’ 사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하남시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사업처럼 일부 시민 단체와 정치권이 퍼뜨리는 ‘전자파 괴담’에 제동이 걸리는 등 장애 요인이 반복된다면 송전망 건설에서 경쟁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국회가 국가 전략산업 육성을 뒷받침하려면 더 늦기 전에 전력망 특별법을 처리해 송전망 건설 지연 사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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