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어르신들이 아들·딸·손주 다 같이 오랜 만에 만나는 즐거운 명절만이 아니에요. 추석이 지나면 요양원으로 가는 어르신이 많아요. 가족과 정말 떨어지는 거죠. 추석에 오랜 만에 다 모였으니 ‘형이 부모님 모셔’ ‘우린 못 모셔’ 서로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거에요. 결국은 부모를 요양원으로 모시는 쪽으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아요.”
올해로 16년째 어르신 돌봄일을 생업으로 삼은 서울에 있는 A노인보호시설의 B 소장은 12일 서울경제와 만나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추석’ 풍경을 털어놨다.
이 시설을 이용하려고 등록한 어르신은 44명이다. 어르신 가정에 직접 찾아가 가사와 돌봄일을 하고 외출도 돕는다. 민간시설임에도 정부 복지기관으로부터 여러 차례 수상 이력도 있는 곳이다. 이런 시설은 서울에만 약 200곳 있다.
이날 오후 20여명의 어르신들이 강의실처럼 책상과 의자가 배치된 큰 방에 모여 있었다. 이 방은 대형 화면을 통해 어르신이 좋아할 트로트 공연 영상과 소리로 가득 찼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지 않았다. 휠체어에 탄 채 영상을 보거나 힘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간간이 부축을 받아 화장실로 가는 어르신들이 이 방의 ‘활기’였다. 꽃무늬가 있는 화사한 색 옷을 입고 머리를 가지런하게 빗어 뒤로 넘긴 할머니는 방 안을 계속 걸으며 웃었다. “오늘도 엄마 이쁘네”하고 칭찬을 건넨 B 소장은 “남편이 꼭 화장까지 예쁘게 하고 시설에 오라고 한다”며 “치매를 앓고 있는데 옷도 잘 차려 입지 않으면, 다른 분들에게 무시 당할까봐 걱정한다”고 말했다.
이 시설은 올해 추석 연휴에도 하루만 쉬기로 했다. ‘추석이 되면 어르신 방문이 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B 소장은 뜻밖의 답을 했다. B 소장은 “평일과 비교하면 2~3명 더 시설에 오겠다는 뜻을 알려왔다”며 “못 봤던 가족들이 모두 모여 같이 있는 게 부담스러운 분들도 있다”고 귀뜸했다. 이어 그는 “집에서 끼니 때마다 밥 차려 달라는 것도 눈치를 본다”며 “집 밖으로 나와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편한 마음으로 식사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B 소장의 걱정은 시설 밖 어르신들과 독거가정이다. 갑자기 시설에 오지 않고 연락이 끊기면 ‘혹시’ 하며 늘 불안하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의 작년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약 4만2000명이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다. 하지만 이들은 일주일에 6일, 하루 5시간 넘게 일해도 월 16만 원을 벌었다. B 소장은 “전에 자녀들이 ‘부모님이 통화가 안 된다’고 연락이 왔었는데,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다”며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경우라면, 꼭 부모댁에 CC(폐쇄회로)TV를 설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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