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의회는 1707년 영국 의회와 통합됐다가 1999년 부활해 자치권 적극 행사에 나섰다. 그 일환으로 이듬해 세계 최초로 온라인으로 지역민들의 요구를 듣는 전자 청원 제도를 도입했다. 영국의 대헌장 및 권리장전에 연원을 둔 국민청원권이 정보기술(IT) 혁명 시대에 ‘온라인 국민 청원’으로 진화한 셈이다.
우리 헌법 26조도 ‘모든 국민은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청원법이 1961년 제정됐다. 2005년에는 청원법에 전자문서를 국민 청원 수단으로 삼을 수 있도록 명시했고 2021년 개정된 청원법은 전자문서로 제출된 청원을 ‘온라인 청원’으로 명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익명으로 온라인 접수가 가능한 ‘청와대 국민 청원’을 도입했다. 그러나 국민 고충 해소보다는 대통령 탄핵, 검찰총장 처벌 등 정치 공세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청와대 국민 청원 제도를 폐지하고 실명 원칙의 ‘국민 제안’ 제도로 바꿨다.
국회도 2020년 온라인 국민 청원인 국민 동의 청원 시스템을 도입했다. 청원 접수 요건은 당초 ‘30일 내 10만 명 동의’였다가 이후 ‘30일 내 5만 명 동의’로 완화됐다. 5만 명 요건은 일반 시민들에게는 높은 문턱이다. 반면 권리당원이 245만 명에 이르는 더불어민주당이나 책임당원 79만 명을 둔 국민의힘을 포함한 주요 정당 및 거대 노조 등은 조직 동원으로 손쉽게 5만 명 요건을 채울 수 있다. 온라인 국민 청원이 극단적 이념 몰이나 정치 공작, 포퓰리즘의 장으로 악용될 소지가 큰 것이다.
최근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에 대응해 우리 측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는 등의 이유로 대통령 탄핵을 주장한 청원 안건이 게시되자 140만여 명이 동의했다. 게다가 민주당은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대통령 탄핵 촉구 청원과 관련한 청문회 계획서 채택을 강행했다. 변질되는 온라인 국민 청원이 본래 취지대로 소시민들의 피해 구제 창구로 거듭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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