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한 지 1주일도 안 돼 ‘국가에너지정책개발그룹’을 구성했다. 딕 체니 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국무부·에너지부 등 7개 부서 장관과 6개 기관장이 참여한 범정부 기구였다. 국가에너지정책개발그룹은 넉 달간의 논의를 거쳐 ‘미국 에너지 정책’ 보고서를 부시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보고서는 “미국 내 석유 생산은 앞으로 20년간 매년 12%씩 감소해 이미 50%에 달하는 수입 의존도가 2020년까지 70%에 육박할 것”이라며 “에너지 안보를 미국 외교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둘 것”을 건의했다. 그러면서 안정된 석유 공급 체계의 확보가 미국에 사활적 중요성을 갖게 될 것임을 강조했다.
이후 미국은 에너지 선점 전략을 국가 안보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총력전을 펼쳤다. 대외적으로 에너지 생산국과 강력한 파트너십을 만들면서 미국 내에서는 에너지 공급원 증대에 팔을 걷어붙였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폭증한 자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자원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중국·아프리카협력포럼, 상하이협력기구 등 다자간 협력 채널을 통해 천연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중앙아시아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다. 중국의 공격적인 해외 자원 개발 정책은 세계 자원 시장 질서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일본도 경제 지원의 대가로 광산 독점 개발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자원 확보전을 펼치고 있다 .
우리나라도 해외 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 때가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해외 자원 개발 기본 계획’을 처음 수립했고 노무현 정부는 아프리카·몽골 등의 해외 광산 투자를 늘리는 등 자원 외교를 펼쳤다. 이명박 정부도 자원 공기업을 대형화해 석유·가스·광물 확보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이후 자원 외교는 동력을 잃었다. 문재인 정부는 외려 해외 자원 개발을 ‘적폐’ 취급하면서 공기업의 해외 광물 자산 매각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2012년 219개이던 해외 광물 자원 개발 사업은 2021년 94개로 크게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석유·가스·핵심 광물 등 자원 확보 여부가 한 국가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로 자리 잡았다. 유전·광산 등 자원의 소유와 개발권, 수송로 확보를 둘러싼 ‘자원 전쟁’이 일상화됐다.
하지만 자원 개발에는 불확실성이라는 위험 요인이 상존한다. 사업 초기에는 대규모 자본 투자가 불가피하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장기 투자가 이뤄져야 조그마한 성과라도 기대할 수 있다. 개발이 성공하더라도 원자재 가격, 경제 상황 등 외부 변수에 따라 수익 변동 폭이 크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에너지·광물 자원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자원 개발을 포기할 수 없다.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은 이런 말을 했다. “지금 당장은 자원 개발 투자가 큰 빛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자원이 있는 곳이라면 아프리카의 뜨거운 사막도, 남아메리카의 숨쉬기 어려운 고산지대도 달려가서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우리 기업들이 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어 팔 수 있습니다.”
지난달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 심해 유전·가스전 개발(대왕고래 프로젝트)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7~8월 중에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 설명회(로드쇼)를 진행하고 12월부터 7개 유망 구조 중 1곳에서 탐사 시추를 할 예정이다. ‘성공률 약 20%’를 고려했을 때 향후 5년간 최소 5개의 시추공을 뚫어야 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시추공 1개에 약 1000억 원이 들어가는 점을 감안하면 총 5000억 원의 자금이 소요된다. 예산을 확보하려면 국회의 협조가 필요한데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세금 낭비로 끝난 ‘부산엑스포’의 재판이 되지 않아야 한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적지 않은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사업 검증은 필요하다. 하지만 자원 개발은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사업이다. ‘정치적 목적’이 의심된다는 식의 정략적 접근은 자제해야 한다. 정부·기업·정치권이 협력해 긴 호흡으로 일관되게 지원해야 자원 개발의 빛을 볼 수 있다. ‘대왕고래’의 성공을 위한 정치권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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