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지 않은 일이지만, 누가 돌아가시면 ‘딜’이 나옵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와 좀처럼 인수합병(M&A) 시장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문득 그는 상속세가 워낙 과도해 상속 관련 이슈가 생긴 기업에는 벌떼처럼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달라붙는다고 했다.
실제 올해 자본시장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거래는 삼성그룹 오너 일가 모녀의 삼성전자 블록딜이다.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은 상속세 납부를 위해 지분을 팔아 올해만 총 2조 6000억 원을 마련했다.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도 5300억 원의 상속세로 고통 받고 있다.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은 상속세 문제를 풀기 위해 OCI와의 통합을 추진했다가 실패했다. 가족 간 경영권 분쟁 속에 임종윤·종훈 형제는 주주총회에서 승리해 이사회에 진입했지만 아직 묘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너 일가의 보유 지분 대다수는 주식담보대출에 묶여 있다. 주가는 올 초 대비 40%나 하락했고 오너 일가 중에서는 최근 반대매매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돈은 필요한데 경영권을 내놓기는 싫으니 투자자와의 협상은 꼬인다.
“가업승계를 두 번 하면 상속세 때문에 회사를 포기해야 한다. 정부가 기업의 주인이 된다”는 기업인들의 말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고(故) 김정주 넥슨 회장의 유족들이 상속세로 낸 NXC 물납 지분 29.3%는 새 주인을 찾지 못해 기획재정부가 2대 주주로 있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다. 물가 상승에도 2000년 이후 24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 기업 주식을 물려줄 때 부과되는 세금에는 ‘최대주주 20% 할증’이 적용돼 60%까지 높아진다. 상속세 공제 한도 10억 원과 일괄 공제 5억 원은 1997년 이후 28년째 묶여 있다.
상속세 개편 논의는 꾸준히 있어왔지만 ‘부자 감세’ 프레임에 묶여 번번이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2021년 문재인 정부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개인별로 상속 받은 재산에 세금을 각각 부과하는 ‘유산취득세’ 도입을 검토했으나 흐지부지됐다.
정부가 증시 밸류업 정책을 확산하고 있지만 정작 핵심인 상속세제 개편은 갈 길이 멀다. 징벌적 상속세는 대주주들이 주가 상승을 꺼리게 만드는 주요인이다. 과표와 공제 금액 조정만이 아닌 최고세율 인하까지 이번 국회에서 바꿔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조금이라도 가까워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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