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사철(沙鐵)이 풍부하다. 고대 일본에서는 철광석 성분이 섞여 있는 모래인 사철을 제련하는 다타라 제철법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중세 시대에는 고품질의 강철로 일본도가 만들어졌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이 제철법이 유래한 다타라 제철소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식 제련 기술을 받아들여 제철소 설립과 철광석 광산 개발에 나섰고, 이는 급속한 산업화의 토대가 됐다.
산업화 과정에서 일본 서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군소 제철소들이 우후죽순 성장하자 일본 정부는 이 가운데 7개 제철소를 1934년 합병해 (구)일본제철을 출범시켰다. 중일전쟁을 앞두고 급증하는 철강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태평양전쟁 이후 연합군이 ‘전범 기업’ 해체의 일환으로 일본제철을 네 개로 쪼개는 바람에 이 회사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일본제철의 철강 패권 시대가 열린 것은 1970년이었다. 야하다제철과 후지제철을 다시 합쳐 탄생한 신일본제철은 이후 28년간 조강 생산량 기준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일본제철 고로의 쇳물은 조선·자동차·전자제품 등 ‘제조업의 쌀’이 돼 일본 경제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중국의 철강사들이 부상하면서 신일본제철은 침체기를 걷게 된다. 신일본제철은 합병 승부수를 띄웠다. 2012년 일본 3위 업체 스미토모금속공업과 합치면서 신일철주금으로 사명을 바꿨다. 2019년에는 원래 이름인 일본제철로 되돌아갔다.
대규모 적자의 늪에 허덕이던 일본제철은 2020년부터 흑자를 내며 부활하고 있다. 과감한 구조 조정과 일본 경제 회복의 덕이다. 이제는 미국 ‘산업화의 아이콘’인 US스틸 인수를 통해 세계 3위 철강사로의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12일 US스틸 주주총회에서 일본제철의 인수 안건이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 열풍이 불고 있지만 끊임없는 담금질을 통해 제조업의 근간인 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우리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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