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5일 5년 만에 전국 수석부장판사 회의가 부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3명의 완전체를 결성해 이달 첫 심리를 진행했다. 그간 사법부가 안고 있던 고질병인 재판 지연을 해소하기 위해 장기 미제 전담 재판부도 신설돼 첫 재판을 열었다. 모두 조희대 대법원장의 취임 이후 사법부에 생긴 변화들이다.
이 가운데 사법부 내부에선 사법행정자문회의 폐지에 관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사법행정자문회의는 대법원장이 독점한 사법행정권을 분산하고 견제하기 위해 도임된 자문회의다.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사법농단' 이후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설립한 기구였단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법조계에 따르면 23일 조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자문회의 폐지와 관련해 논의를 진행 중이다. 폐지 확정 여부는 공식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으나, 사실상 폐지로 가닥이 잡힌 상황으로 이를 대체할 자문회의 기구의 신설 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선 사법행정자문회의 폐지와 관련해 당혹스러운 분위기도 일부 감지된다. 사법행정자문회의의 폐지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조 대법원장의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회의는 열리지 않아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가 다시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사법행정자문회의는 대법원장이 단독으로 설립한 기구가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건 이후 사법행정권에 대한 분산과 견제의 필요성이 커졌고, 이에 법원 내외부 인사들이 참여해 사법발전위원회를 결성하면서 2019년 9월 출범했다.
물론 사법행정자문회의가 폐지와 동시에 대법원장에게 막강한 권력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자문회의 역시 일각에선 대법원장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종의 '거수기' 역할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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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법부가 이미 사법농단이라는 홍역을 앓고 난 만큼 사법행정권에 대한 견제와 분산은 필요하다. 대법원장이 인사와 예산을 비롯한 여러 사법행정권을 독점할 경우 법관 내 관료화 등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탓이다.
이달 15일 5년 만에 한 자리에 모인 34명의 전국 수석부장판사들은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실현을 위해 의견을 나눴다. 실무에 관한 논의 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도 논의해 사회적인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회의에 참석해 "중요한 위치에서 막중한 임무를 담당하는 수석부장들이 법원 구성원과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 법원이 나아갈 방향을 숙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법관들은 5월 열릴 대법관회의서 사법행정자문회의 폐지를 논의한다.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구현이 현 사법부가 안고 있는 과제라면 법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그 어느때보다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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