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문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 테라젠헬스 마이크로바이옴 랩. 3℃에 맞춰진 거대한 산업용 냉장고 안에는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마이크로 튜브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분변을 희석한 용액이 담긴 튜브지만 실험실은 옅어진 농도와 낮은 온도 덕분에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튜브에 담긴 반투명 액체를 전처리실로 옮기고 PH농도에 맞춰 작은 구슬(비드)로 쪼개는 균질화 작업을 진행했다. 사람마다 식습관, 건강상태, 나이 등이 다른 만큼 분석에 앞서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균질화를 거친 샘플에서는 본격적으로 미생물 유전자(DNA) 추출이 시작된다. DNA가 자성에 붙는 성질을 이용해 수차례 정제를 거치자 튜브에는 투명한 액체만 남았다. 김연범 팀장(이학박사)은 “사람의 유전자를 추출하는 게 아니라 분변 속에 있는 미생물 DNA를 채취하는 작업” 이라며 “사람의 몸에서 나온 미생물 DNA에 고유 식별 튜브를 입힌 후 분석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연간 10만건 분석…미생물 분석 시장 선도=롯데헬스케어의 자회사 테라젠헬스는 지난달 마이크로바이옴 전문 연구실을 열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몸 안에 사는 미생물의 생태계다. 2020년 이후 만성질환, 대사질환, 심장병, 암 등의 질환과 마이크로바이옴간 연관성이 잇따라 밝혀지며 의료계와 미용계, 나아가 식음료업계 등 다양한 분야의 주목 받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테라젠바이오가 전문 연구실을 개소한 배경도 미생물 분석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다.
실험실은 연간 10만 건의 DNA(유전자) 샘플을 검사할 수 있는 규모로 설립됐다. DNA 추출부터 분석까지 전 과정을 직접 진행한다. 덕분에 시료 수집부터 분석 결과를 전달까지 걸리는 시간도 기존 3주에서 2주로 단축됐다. 분석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초정밀 유전체 분석 시퀀싱 시스템 ‘아비티(AVITI)’도 도입했다. 김 팀장은 “다른 유전체 분석 장비가 99.9%까지 분석 가능하다면 아비티는 99.99%까지 가능하다”며 “0.09%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최첨단 의료기술에서는 굉장히 큰 차이”라고 강조했다.
◇배탈 넘어 체중관리, 집중력까지=총 8단계로 이뤄진 분석과정을 거치면 변비와 설사 같은 장 문제는 물론 스트레스, 집중력, 수면건강, 체중관리, 혈액순환, 알코올 분해능력 등 장내 미생물로 분석 가능한 종합 건강 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 미생물 DNA 분석으로 비만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균인 ‘퍼미큐티스’가 얼마나 높은 지 등을 보는 식이다. 이와 함께 각자에게 맞는 프로바이오틱스와 영앙제, 음식 등 장내 미생물을 가꾸는 방법도 추천 받을 수 있다.
테라젠헬스가 기존 유전자 검사에서 마이크로바이옴으로 분석 대상을 확장한 이유는 두가지 검사가 상호보완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황태순 테라젠헬스 공동 대표는 “선천적인 원인을 확인하는 게 유전자 검사라면 후천적으로 이를 보완하는 것이 장내 미생물 분석”이라며 “통상 유전적 영향은 질병 발생에 있어 15%, 후천적 영향은 85% 비중으로 보기 때문에 좀 더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면 두가지 검사를 같이 진행하는 것이 효과가 더 좋다”고 말했다.
◇채취 방식 다양화…검사 장벽 낮춘다=테라젠헬스는 올 하반기 중으로 롯데헬스케어와 마이크로바이옴 검사 키트를 출시할 예정이다. 분석 결과는 헬스케어 플랫폼 ‘캐즐’을 통해 받아볼 수 있다. 특히 미생물 분석에 진입 장벽으로 여겨진 검체 채취 방식도 다양화할 계획이다. 이미 시중에 피부, 구강 등 다른 방식을 통해 미생물을 채취하는 방법이 나와있지만 정확도 면에서 기존 방식을 따라잡기 어려운 만큼 정확한 진단은 분변 채취 방식, 간단한 진단은 분변 외 다른 채취 방식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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