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지주 계열 벤처캐피털(VC)들이 임기 만료를 앞뒀던 전문경영인(CEO)들에 대한 연임 결정을 내리고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경영인들이 최근 들어 크게 침체한 벤처투자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운용자산을 늘리고 일본, 미국 등 해외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는 등의 성과를 만들어낸 덕분으로 풀이된다.
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국금융지주(071050) 계열 VC인 한국투자파트너스는 황만순 대표의 연임을 결정했다. 황 대표는 2020년 12월 취임하며 3년간 회사를 이끌어왔는데, 이번 연임 결정으로 임기가 1년 늘어났다. 한투파의 경우 3년 단위로 대표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향후 2026년까지는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황 대표는 국내를 대표하는 바이오 투자 전문 심사역이다. 서울대학교 약학 석사 출신으로 국내 코스닥에 상장된 바이오 기업의 상당수가 황 대표의 투자를 통해 성장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대표적으로 최근 2조 원대의 해외 기술이전에 성공한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를 비롯해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한 에이치엘비(HLB) 등이 황 대표의 조력을 받았다.
이번 황 대표의 연임은 시장 혹한기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펀드 결성과 투자에 나서면서 국내 1위 VC로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12월 말 기준 한투파의 벤처펀드 운용자산은 약 3조 원을 웃도는 수준으로 수년째 1위를 지키고 있다. 특히 올해는 싱가포르 현지에서 6000만 달러(약 811억 원) 규모 펀드 결성에도 성공, 본격적인 동남아 시장 공략의 신호탄을 쏜 것도 주목할 만한 성과 중 하나로 평가된다.
KB금융(105560)지주 산하 KB인베스트먼트도 김종필 대표의 임기를 1년 연장했다. 김 대표는 2018년 3월 KB인베스트 사령탑을 맡으며 올해까지 6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최근 KB금융지주 양종희 회장이 새롭게 취임하면서 계열사인 KB인베스트 역시 대표 교체가 유력하게 점쳐졌으나 예상과 다르게 결과는 연임이었다. 김 대표는 이로써 7년간 KB인베스트 대표를 맡게 됐으며, 금융지주 계열 VC 중에선 최장수로 기록될 전망이다.
김 대표는 국내 벤처투자 업계에서 남다른 리더쉽을 갖추고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지난 20년간 업계를 대표하는 심사역으로 일하며 높은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쌓아오면서, 업계 심사역들로부터 높은 신망을 얻은 덕분이다.
이번 연임도 대체 불가능한 김 대표의 역량을 인정받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KB인베스트는 김 대표 취임 이후 업계에서의 위상이 이전보다 180도 달라졌다. 김 대표 취임 전 KB인베스트의 운용자산은 6000억 원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말 기준 약 2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 1위의 운용자산을 자랑하는 한투파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모양새다.
신한금융지주(신한지주(055550))도 신한벤처투자의 이동현 대표를 재선임하기로 했다. 이 대표는 2020년 9월부터 신한벤처 수장을 맡고 있으며, 2022년 임기 연장에 한 차례 성공한 이후 또다시 1년의 추가 임기를 부여받게 됐다. 신한금융지주 이사회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어려운 경영 환경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적임자”라고 재선임 배경을 밝혔다.
신한벤처 역시 이 대표 취임 이후 빠르게 운용자산을 늘리며 국내 선두권 VC로 도약하고 있다. 누적 펀드 수는 34개, 운용자산 규모 약 1조 5000억 원에 달한다. 또 이 대표는 취임 이후 초기 스타트업과 해외 투자 역량을 대폭 강화하면서 탄탄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최근 일본에서 벤처펀드 결성에 성공하면서 현지 벤처투자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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