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원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사퇴 압박에 내몰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잠행 이틀째인 13일 대표직 사퇴 입장을 밝히면서 여당은 내년도 총선을 앞두고 리더십 재편의 변곡점에 서게 됐다. 국민의힘이 윤재옥 원내대표의 당 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다가 비상대책위원회를 띄워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유력한 가운데 당을 위기에서 구할 ‘구원투수’를 누가 맡을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날 여당에 따르면 윤 원내대표는 14일 오전 3선 이상 중진의원들이 참여하는 연석회의를 열어 당 대표 공석에 따른 당 운영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김 대표의 잠행으로 취소됐던 최고위원회의도 정상적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윤 원내대표는 비대위 출범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런 이야기를 포함해 내일 공식 회의체에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 대표가 사퇴할 경우 비대위 전환이 가능하다. 비대위 출범 없이 당 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조기에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릴 수도 있지만 윤 원내대표만으로 총선을 치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에 당 안팎에서는 대중성과 중도 확장성을 지닌 비대위원장을 내세워 선거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비대위원장 후보로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 내각 인사와 함께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인요한 혁신위원장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원 장관은 3선 의원 출신에다 재선 제주지사를 지내기까지 수많은 선거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다.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 ‘1위’에 오른 한 장관은 내년 총선을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혁신위원회를 통해 끝내 당내 ‘주류 희생’을 관철시키는 데 성공한 인 위원장에게 당권을 일임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날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CBS라디오에 나와 “(한·원 장관만으로는) 지지층 확성에 의문이 있다”고 평가하며 ‘인요한·한동훈’ 또는 ‘인요한·원희룡’ 공동 비대위원장 가능성도 언급했다.
장 의원에 이어 김 대표가 ‘용퇴’의 불씨를 댕기면서 이제 기득권을 내려놓는 쇄신의 바람이 여당 내 친윤 주류 등으로 옮겨붙을 수밖에 없게 됐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장 의원이 촉발한 인적 쇄신의 흐름이 이어지도록 이들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게 당내 여론이다.
장 의원을 포함한 당내 친윤 중에서도 정진석 국회 부의장(5선, 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 권성동(4선, 강원 강릉), 윤한홍(재선,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 이철규(재선, 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 의원 등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앞서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지난달 초부터 “대통령과 가까운 분들부터 총선 불출마나 험지 출마 등 희생의 자세를 보여달라”고 요구했지만 한 달 넘도록 묵묵부답이었다. 일부 비주류 의원들도 혁신위에 힘을 실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장 의원의 불출마 선언과 김 대표의 사퇴 선언 이후 기류가 급변하고 있다. 혁신 실천 여부의 가늠자로 꼽혔던 김 대표가 스스로 물러남에 따라 ‘친윤계의 도미노식 희생’이 총선 승리를 위한 여당의 승부수로 평가되는 분위기다. 다만 ‘친윤’ 의원이라도 당내 권한과 선수 등에 따라 책임 범위가 달리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에서 권성동·윤한홍·이철규 의원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김제동(김기현·권성동·장제원) 프레임’이 적절하지 않다. 권 의원은 전당대회의 피해자로 윤핵관이 아닌 지 오래됐다”며 “초·재선급 의원에 대해서도 ‘친윤’이라는 이유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과한 조치”라고 밝혔다.
당내 역할과 출마 지역 등에 따라 선택지가 다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철규 의원의 경우 사무총장에 이어 인재영입위원장까지 맡으며 당내 ‘핵심 플레이어’로 활약해왔다. 이 의원은 총선 출마 지역도 야당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경기도 구리시를 검토하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이 의원은 구리시에 강원도 출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권성동·윤한홍 의원은 현 지역구인 강원도와 경상도를 벗어나 활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준석 전 국민의 힘 대표는 13일 오후 유튜브에 출연해 김 대표와 이날 오전 회동한 사실을 전하며 “성급하게 거취를 결정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해드렸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여당 안팎에서는 김 대표가 거취 결단을 내리기 전 이 전 대표의 탈당 및 신당 행보를 되돌려 당의 통합을 당부하기 위해 만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이날 만남은 이번 거취 결정과 관계 없이 예정된 회동이었다는 전언도 당 안팎에서 들리고 있다. 정치권은 이미 이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을 결심한 상태여서 돌아오기 어려운 강을 건넌 것 같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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