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의 징후를 감지한 이가 있었다. 수급업체 안전감시단 직원 윤석형(가명) 씨다. 그는 사고 당일 오전 38층 외벽 거푸집 근처에서 15cm 정도의 균열을 확인했다. 볼펜으로 그은 것보다 약간 굵은 폭이었다. 건설 현장에서 균열이란 아무리 작아도 유의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단체 메신저에 이 내용을 알렸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상급자들은 별다른 코멘트가 없었다. 당연히 현장 작업자들에게 이 내용이 전해지지 않았다. 만약 이때라도 위험 상황을 알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사망자의 대부분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28~34층에서 소방배관과 창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어떤 위험 시그널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가 7일 발간한 ‘중대재해 사고백서’에서 작년 1월 11일 근로자 6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를 기록한 부분 중 일부다. 최초의 붕괴는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이던 39층이 아니라 피트층 바닥에서 일어났다. 백서에서 사고를 담당했던 송민호 고용부 산업안전보건감독관은 “연쇄 붕괘가 일어난 층들의 콘크리트 압축강도가 충격적인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중대재해법 1호 판결을 받은 A 건설사의 대표는 법정에서 “중대재해법 시행령에 고지된 조치를 실행하려고 했으나 소규모 건설사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며 “주변 비슷한 규모의 기업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건설사 대표는 작년 5월 경기 한 요양병원 증축 공사를 하다가 근로자 사망 사고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백서는 A건설사에 대해 “공사비 50억원 내외의 주택을 다수 시공한 회사였다”며 “30억원 이상 건설 공사에서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지정해야 한다”고 대표의 주장을 반박했다. A건설사는 건설재해예방전문지도기관의 기술지도를 월 2회 이수해야 한다. 이런 안전 규정은 중대재해법 시행 전부터 이 법의 모법인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이미 명시됐다. A건설사는 중대재해법과 연결 짓지 않더라도 안전 관리체계가 허술했다는 게 백서의 지적인 것이다. 대표 업무 집중 체제로 여러 현장의 사고 예방 책임 소재가 불분명했고 현장 안전관리자는 고용부에 선임 신고를 하지 않았다. 백서는 “공사 규모와 상관없이 예전부터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관심과 대책이 없었다”며 “사고 당시 작업계획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건설업 사고는 허술한 안전 체계와 근로자의 안전불감증, 현장관리인력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원정훈 충북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일하면 처음에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다가 점점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며 “'내가 방금 엄청나게 위험했구나’라고 제지하는 역할을 관리감독자가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7일 발간된 고용부의 백서는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채석장 붕괴 사고, 식품업체 끼임사고 등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10개 사고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기술했다. 424페이지로 짜여진 백서는 당시 사고 직전 상황과 사고 과정 원인, 사고 예방 대책을 사고 현장 근로자와 담당 감독관 등의 증언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백서는 읽으면 현장에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만큼 사고의 긴박감과 안타까움을 고스란히 전했다. 사고를 당하거나 목격한 이들의 관점을 통해 누구나 사고를 당할 수 있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교훈도 담고 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발간사에서 “백서는 사고를 막기 위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자료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라며 “모든 근로자는 일터에서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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