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한 독일 수입차 브랜드의 2000년식 초록색 승용차를 서울의 한 중고차 매매 단지에서 샀다. 현장에서 계약서를 쓰고 사장에게 매매 대금을 이체했다. 생애 첫 차였다.
사장은 친절했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중고차를 팔았다고 소개한 그는 “차를 산 고객에게 밥을 대접해왔다”면서 근처 칼국숫집으로 데려갔다. 그때는 차를 잘 샀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바뀐 것은 오래지 않았다. 한번은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머플러에서 ‘달달달’ 거리는 소리가 났다. 카센터에서는 머플러가 노후화돼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부품이 없으니 그냥 타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시내 주행을 하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끼익~’ 하며 못으로 유리를 긁는 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디스크 마모가 원인이었는데 공임을 포함해 수리 견적만 100만 원에 달했다. 그제서야 사장이 칼국수를 대접한 이유를 깨달았다.
중고차는 서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첫 차로 중고차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고차와 관련한 기억은 대부분 좋지 않다. 일부 몰지각한 매매업자의 비도덕적인 판매 행위가 시장의 평판을 만들고 고객을 떠나게 한다.
지금 중고차 시장이 딱 그렇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지난해 기준 238만 대 규모로 신차의 약 1.4배에 달하지만 시장이 혼탁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중고차 소비자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시장에 대한 신뢰도는 14.8%에 불과했다.
불신의 중고차 시장이 대격변기를 맞고 있다. 현대차(005380)가 이달 19일 인증 중고차 사업 개시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사업 준비 과정에서 기존 중고차 업계의 반발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점유율 제한을 거는 등 상생을 약속했다. 이와 동시에 엄격한 품질 기준과 신차 수준의 상품화 절차를 적용하고 투명한 정보 제공으로 차별화하겠다고 밝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고객들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중고차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있지만 고객들은 현대차의 진출로 중고차 시장이 정화되는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본 것이다.
현대차의 진출로 중고차 시장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정보의 비대칭 문제가 해소되면 시장에 대한 신뢰가 회복돼 중고차 업체들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 또한 나온다. 허위 매물 대신 양질의 매물을 확보해 적당한 마진을 붙여 파는 매매업자들이 시장의 주류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칼국수 대접으로 고객의 환심을 사 차량의 문제를 덮으려는 얄팍한 꾀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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